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을 Mar 26. 2023

변신 상담소

<변신> 프란츠 카프카


인류의 변신 최고참은 누구일까? 대한민국이라면 웅녀가 있겠다. 그보다 더 먼저 변신에 성공한 인류가 있다. 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에 등장하는 길가메시의 친구 ‘엔키두’. 엔키두는 아루루 신이 찰흙을 떼어 대초원에 뿌리자 창조되었다. 온 몸은 털로 덮여 있고 긴 머리칼이 소의 몸 같은 신체를 덮었다. 엔키두는 야생에서 야수들과 살아간다. 길가메시가 보낸 샴하트와 6일 낮 7일 밤동안 섹스를 하자 야생의 기운이 빠졌고, 숲에서 버려졌다. 샴하트의 사랑과 돌봄 속에서 인간의 음식을 먹고 기름으로 씻어내자 털투성이 몸을 벗고 ‘사람’으로 변했다. 웅녀보다 신성 가득한 엔키두 옹이 최초의 변신 선배일 테다.


엔키두의 뒤를 이어 수많은 후배들이 선배들의 변신을 뒤따랐다. 신화의 시대에는 신적인 힘이,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마법의 힘이, 이성이 힘썼던 근대에는 과학이 변신을 도왔다. 그들은 동기가 있었고, 마법이 도왔든, 과학이 개입했든 변신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되돌아가거나 변신 이후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밑도 끝도 없이 하루 아침에 갑충이되는 건 변칙이다. 까닭과 동기를 알 길이 없어 그레고르에게 어떤 처방을 내려햐 할 지 난감하다. 변신 선배들에게 들어보자.


엔키두 : 신의 힘으로 대지에서 태어나 야생에서 야수로 살아감. 인간 샴하트와 7일 동안 섹스한 뒤 인간의 음식을 먹고 기름으로 씻은 뒤 사람으로 변신. 현재까진 인류 최초, 세계 최초 변신 타이틀 보유자.


To. 그레고르 : 일단 섹스야. 여자에게 푹 빠지고 나니 시키는대로 하게 되던 걸. 문명을 받아들여. 상한 걸 먹지 말고. 빵이나 술을 먹게. 잘 씻고.


웅녀 : 한반도 최초의 변신 성공 사례. 한반도 내 타이틀 보유자. 곰에서 인간으로 변신. 빛을 보지 않고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는다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환웅의 *소리를 믿었던 바, 정말 사람이 되었다.(난 왜 아직도 단군 부인인 것만 같지? 우리도 오이디푸스 막장 갈 수 있었는데.)


To. 그레고르 (마늘 한 자루를 투척하며) 먹어. 100일 준다.


미녀의 애인 야수 : 마법에 걸려 야수로 변한 왕자. 진정한 사랑을 이룰 때 마법이 풀리는데 벨이라는 미녀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고, 왕자로 돌아온다.


To. 그레고르: 사랑이지, 암. 자네 캐슬은 있겠지? 아름답지 않고 무용한 존재라면 캐슬 하나쯤은 지니고 있어야 하지. 신사다움은 거들 뿐이야.


개구리 왕자 : 마법에 걸려 개구리로 변했고, 공주의 침대에 같이 눕는 데 성공하면 마법이 풀리게 된다고 해서 갖은 수작으로 왕자로 되돌아옴.


To. 그레고르 : 비굴하지만 어쩌겠나. 조르고 달래서 무작정 침대 옆에 눕게. 개구리도 하는데 갑충이 못할 게 뭐 있나? 아, 자네는 마법에 걸린 게 아니라구? 망하게 하는 마법사는 흔한데 돕는 마법사는 내 아직 못 봐서 소개는 불가하겠군.


지킬 :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싶은 지킬은 자신의 경박한 쪽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바람에 이중적인 사람이 됨. 선악이 골이 깊어지면서 약물을 통해 하이드로 변신하게 되었으나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르고, 점점 하이드에게 장악당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To. 그레고르 : 자네도 나처럼 억눌려 있더군. 우리 시대의 인간들은 굶주림은 벗어났지만 자신의 행복에는 이르지 못했네. 이것이 우리 시대 변신의 조건이야. 변신은 계급의 문제라고. 아무튼 되돌아가는 방법을 내가 알려주지. 불순물이 든 약인데 말이야. 그게..... 자네 가능하다면 좀 구해주겠나? 나 좀 도와주게. 나 좀 도와줘~~


헐크 : 감마 폭탄을 만들다가 폭발 사고로 감마선에 노출이 되어 분노를 느낄 때 헐크로 변함. 블랙 위도우의 애정에 반응해 사람으로 돌아오기도 함.


To. 그레고르 : 감마선이지. 감마선에 자신을 노출시켜봐. 거대 초록 갑충으로 변할 거야. 지금 사이즈는 애매해서 커지는 편이 낫지 않겠나?


앤트맨 : 핌 입자에 쏘이면 개미처럼 작아지는 마블의 영웅.


To. 그레고르 : 헐크가 더 커지라고 하던데 헛소리야. 작아지게. 내가 개발한 핌 입자를 이용하면 개미만큼 작아질 수 있네. 자네는 개미들과 어울리는 편이 낫겠어.


무엇이 변신에 개입했든, 변신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강한 열망.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인류 최초 변신도 인간의 평범한 욕구였다. 키스 한 번, 사랑, 식사 같은 것들. 카프카의 갑충 그레고르처럼 무기력하고 잠잠한 변신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그것이 그레고르가 변신하게 된 까닭이 아닐까. 그러니까 까닭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변신의 이유가 되는 셈이다. 스스로 이 변신의 변곡점을 알아내지도, 알아낼 의사도 없이 무기력해진 삶이므로, 무엇으로 변하든 돌아갈 까닭을 찾지 못하는 것. 그가 창고에 내려가 음식을 구해볼 마음을 먹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실행했더라면, 자신이 만든 액자를 지키려 했듯 자신의 방을 지키려 했다면, 이런 작은 열망들을 그가 성취해나갔다면 아마 이 변신은 또다른 변신을 가져왔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도 카프카의 시대와 사맛디 아니할세, 까닭 모를 우울과 공황 장애, 번아웃 등으로 동굴에 갇힌다. 이런 변신에도 이유가 있다. 김경미 시인은 변신의 변곡점을 모른 채 변하고, 임계점을 모른 채 넘기는 순간에 주목한다. “나 알고 싶은 것은, 우유가 물컹 젤리로 상하는 그 순간/벽시계와 건전지가 마지막 떨림을 끝내는/단추가 옷을 수놓는/유리가 자신을 깨기로 하는/달리던 공이 멈추기로 하는 그 결정의 순간의 까닭과 표정” “그 한 정점의 마이크로라이프”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 오늘에서 내일로 옮아가는 변질의 순간들에 마음을 주게 한다. 우리 삶의 임계량도 이런 감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있다면 돌아갈 방법을, 그만두기로 하는 그 결정의 순간의 까닭과 표정을 알아챌 수 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K개츠비와 A 개츠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