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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Nov 08. 2023

브런치북 완독률 0.0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작가>에서 "소설가는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그 링 위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힘든 직업"이라고 했다. 이 수준에서 말하자면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는 건 쉬워도 이 링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힘들다. 하루키의 말을 달리 생각하면 끈질기게 버텨 살아남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말이기도 하니 범임들에게 반가운 말이지만, 그야말로 말만 쉽다.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천재 예술가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그러니까 방탕한 악동의 이미지를 날려버린 첫 작가다. 그는 매일 달리는 것처럼 매일 꾸준히 써서 70니 넘는 나이에도 링에서 버티는 직업인으로서 소설가이다.


그가 옳다. 대가라면 꾸준함이지, 고수라면 꾸준함이다. 하수만이 빠른 성취를 노리고, 빠르게 포기한다.  한 존재에게서 천재성은 주목할만하지 않다. 대작가도 꾸준히 매일 달리고 쓰는데 나같은 초짜에게 말해 무엇하리.


브런치 스토리도 격한 링이다. 주목받기 어렵고 오래 버티기 어려우며 출간은 더더욱 어렵다. 자린고비의 목적에 따라 모두가 천장의 굴비만 쳐다보는 꼴이다. 온갖가지 메뉴가 가득한 뷔페보다야 한 메뉴만을 생산해내는 제대로 된 음식점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포털의 블로그보다 매력적이다. 아이의 피구 이야기를 쓰면 스포츠용품점의 댓글이 달리고, 술과 계면활성제를 쓰면 미용업체에서 댓글을 다는 허탈함이 없어서 좋다.  글쓰기만을 위한 투자, 구체적인 출간 목표 제시 등으로는 브런치스토리만한 데가 없어서 모여들긴 하지만 목표를 쳐다보는 내내 목아지가 아프다.


처음 글을 올리고 라이킷을 받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버튼을 우주에서 누른 것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아직도 기다린다. 글을 올리고 나면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알람을 확인한다. 스크린 타임 해제까지 해가며 기다린다. 간혹 메인에 뜨면 신이 난다. 이런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실패는 불보듯 뻔하다. 두 달 정도 되어가니 라이킷 수는 품앗이에 가깝고, 글의 질이 독자나 라이킷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지만 그대로 숫자를 체크한다. 부질없다, 아니다를 반복하는 분열을 겪는다. 그러다 브런치 스토리의 본래 기능을 주목한다.


브런치 스토리의  제1기능은 아무래도 링 위에서 꾸준히 버티게 해주는 것이다. 꾸준히 쓰려면 독자가 있어야 하고, 좋은 글을 알리는 에디터가 있어야 한다. 브런치 작가도 나름의 수준 높은 기준이 있어서 자주 낙방하고는 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작가들의 글을 보니 대체로 먹는 이야기들이라 그까이거 대충인 것 같지만 막상 내가 쓰려면 그만도 못할 때가 많다. 당연하다. 그 글은 모두 각자 애쓴 결과니까. 그러면서도 편하게 스크롤을 내리다보면 회사마다 제일 열심히 일하는 건 인턴이라던데 작가 통과하기 위해 쓴 글이 제일 좋았나? 싶을 때도 여전히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받은 첫 알람은 꾸준히 글을 써서 글쓰기 근육을 키워보라는 것이었다. 작가 신청을 받고 글을 안 쓴지 2주쯤 되어 가는 즈음이었다. 글 근육 소실이 시작되는 지점인 걸 잘 아는 눈치다. 나도 안다만, 근육은 몸이든 글이든 둘 다 힘들다. 꾸준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글을 쓰고 싶은데 왜 이렇게 써지지가 않는 것일까. 그래도 알람을 받았으니 어찌어찌 써본다.


글을 올리고 나면 네 부류의 독자가 생긴다. 글을 발행하자마자 1분도 안 되어서 라이킷을 누르는 독자.(쓰는 건 하루종일인데 1분도 안 되 라이킷이 뜨면 기분이 묘하다.) 나와 글쓰기 모임을 하는 친구들, 새 글을 꾸준히 읽기를 즐기는 이름 모를 독자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 에디터. 


딩동 알람 소리는 대체로 6시간 안에 끝난다. 이후 글은 안치된다. 깜깜한 시간에 올리면 이슬이 내리기 급하게 사라지고, 대낮에 올리면 밤이슬이 내리기 전에 사라진다. 모든 글을 태양의 순례에 따라 시한부를 살아간다. 심폐소생술은 브런치스토리 에디터에게 달렸지만 공공의 의무가 없는지라 글은 우수수 목숨을 떨군다.


내 글이 간혹 메인에 뜨면 브런치북의 수준 높은 안목과 근면함에 놀라고, 오랫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으면 게으름과 글을 보는 형편없는 안목에 질려서 악담을 늘어놓는다. 이런 분열은 브런치 스토리를 하는 내내 어떤 식으로든 무한 재생된다.


2023년 브런치 북 응모를 40분 앞두고 한 달 만에 글 12개를 써서 브런치 북을 완성했다. 브런치북을 완성해서 응모한 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글근육 키우라는 알람도 라이킷 알람도 없다. 개미새끼 한 마리 오가지 않는 브런치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람이?


브런치북 "이제 [하수 백서] 브런치북의 독자 정보 분석 결과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알람이다. 분석 결과라고? 당장 열어본다. 완독자 0.0명.

이 굴욕적인 숫자를 확인시켜주고자 친절하게 브런치스토리가 알람을 주었다. '멕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글쓰기 모임의 친구는 말했다.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쓰게 된다, 라고. 브런치 스토리를 지인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0도 아니고 0.0, 온 지인을 동원해도 불가능할 완독률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으로 꽉 채운 0이다.


0이 구체물이 되면 우물이다. 메마른 우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숨기고 있어서지. 브런치스토리가 가혹한 건 메마른 우물을 확인시켜줘서겠다. 어쩌면 쓰는 이에게 도 읽는 이에게도 완독률은 언제나 고지가 아닌가 싶다. 잘 팔린 책도 완독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미지의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탄탄한 품앗이의 세계 속에서 누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타인의 글을 읽어줄까. 있지만 나에게 없는 것일까. 브런치스토리를 했던 내내 글을 읽지 않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는 비슷하지만 글을 읽는 데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걸 확인해오지 않았던가. 


브런치스토리의 메인 화면을 본다. 점점 자주 클릭한다. 그맛이 그맛인 글 속에서 병맛을 찾는다. 내 구미에 맞는 글은 없나? 있다. 심지어 잘 썼다. 나보다 잘 써서 외면하기로 한다. 별로다 재미없다. 뻔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외면하기로 한다. 이런 옹졸함을 이겨낸 자가 좋은 독자가 되는 거겠지. 특출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승부를 보는 이곳에서 좋은 독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의외로 솔직하고 용감한 태도일까?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진격의 상추"가 7만뷰를 돌파했다. 다음 메인에 떴던 것이다. 첫끝발이 개끝발인가. 브런치북을 만들고 완독률 0.0의 숫자를 받아들고 보니 의욕이 꺾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치러야 할 비용은 쓰더라도 안 쓰더라도 같을 것이다. 아니 안 쓰면 더 크지 않겠는가. 나의 출사표는 이제 시작이지. 그러니 오늘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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