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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Mar 02. 2023

나의 밝음은 오래되고 화는 '새삥'이니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

“내가 이제 육체의 형태를 갖추게 된 내 성격의 약한 면은 내가 버린 선한 면에 비해 덜 건장하고 덜 발달되어 있었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결국 90퍼센트 정도는 노력과 미덕과 절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 악한 면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훨씬 덜 활용되고 덜 조달되었지.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하이드는 헨리 지킬에 비해 작고 가늘고 젊었던 것 같네."


지킬과 하이드는 고전 소설계의 스타 중 스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수시로 분열하는 자아를 설명할 때 광속으로 호출할 대명사로 지킬과 하이드 이상을 알지 못한다. 모든 스타들이 그렇듯 ”지킬과 하이드“에게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지킬은 ”고개를 떳떳이 들고 싶다는 욕망, 대중 앞에 섰을 때 남달리 진중한 표정을 짓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과 경박한 성향을 절충하기 어려워“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중성 즉, 다른 사람들보다 선과 악의 골이 깊어진 것은 지킬의 실수가 더 악질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망이 엄격해서였다. 아, 소망이 더 엄격해서라니 이런 지킬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다. 지킬은 말한다. ”이중적인 인간이기는 했지만 나를 위선자라 부를 수는 없었네. 내 양면은 둘 다 아주 진지했기 때문이지“ 지킬이 이 둘을 분리하면 어떨까에 골몰하게 된 이유다. 그의 생각대로 양쪽이 각각 분리된 몸체에 깃들 수만 있다면 정의로운 쪽과 불의한 쪽 모두 자기 방향으로 정진할 수 있으리라. 실험은 성공했다. 약제를 만들어 마시고 하이드에게 몸을 부여한다. ”그 새로움으로 인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느낌이 찾아왔지. 내 육체가 더 젊고 가볍고 행복하게 느껴졌네.“


출처 : 조승우 스타덤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지킬이 하이드의 존재를 설명하는 순간 알았다. ‘동갑내기가 아니다. 지킬과 하이드. 지킬은 초로의 사나이, 하이드는 그보다 훨씬 젊다.’ 지킬이 초로의 남성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하이드랑 동갑이 아니라니. 대한민국의 대표 지킬 조승우 때문에 나는 지킬이 젊은 남성인줄로만 알았지 뭔가.(옆 사진을 보면 동감하실 수밖에) 지킬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 하이드의 젊음에 대해 쓴다.




“내가 이제 육체의 형태를 갖추게 된 내 성격의 약한 면은 내가 버린 선한 면에 비해 덜 건장하고 덜 발달되어 있었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결국 90퍼센트 정도는 노력과 미덕과 절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 악한 면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훨씬 덜 활용되고 덜 조달되었지.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하이드는 헨리 지킬에 비해 작고 가늘고 젊었던 것 같네.


그랬다. 지킬이 분리해낸 하이드는 소진되지 않았기에 오래되어 닮은 지킬보다 팔팔하고 생생했다. 하이드의 악함에 해방감을 느꼈던 지킬이기는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하이드의 젊음, 새삥인 자아에게 매료되었던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하이드의 순수한 열정 때문에 어떤 순간 동정심을 느꼈을 법도 하다.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아들뻘이니, 오래 헤어져 지냈던 아들과 상봉한듯 “저렇게 좋아하는데 저렇게 생생한데 내가 널 외면하다니”라고 애틋하게 읊조렸을 지도. 이건 어디까지나 초반의 감정이다. 하이드가 타인을 짖밟고 살인을 저지르면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내가 옳다고 선택하게 되면 갈등하던 반대쪽은 숨거나 버림받는다. 버림받은 쪽, 숨겨진 쪽은 점점 길들여져 작아진다고 생각했지만, 지킬과 하이드처럼 오히려 반대를 분리시켜 살아있는 존재가 되면 그것은 더 젊고 생생할 수도 있다니. 그래서 평소 억누르고 참고자 했던 화는 그토록 생생하고 가공할 에너지를 뽐냈던 것일까? 꽤 논리적이지 않은가. 화는 원래가 뜨겁다기 보다 젊고 미숙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물론, 최근의 내 화들은 급격히 나이를 먹었을 테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생생함을 써버리고 나면 어쨌든 하나의 육체를 공유해야 하니 본래의 캐릭터는 두 배로 급속히 늙어가는 건 아닐까? 현재의 나에게도 양분된 혹은 여러 갈래의 자아들이 이토록 혼재되어 늙음을 재촉하고 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오늘은 본캐 B사감에게 대항하는 항B사감데이다. 평소 본캐 B사감의 자기 검열에 숨죽였거나 가끔 분출되어 한 육체를 쇠락하게 했던 새삥 부캐들이 모두 출동하는 날이다. 오늘 하루 B 사감은 쉬기로 한다. 오늘 시츄에이션의 주인공은 둘째와 나다. 사춘기 자녀에겐 그분이 자주 오신다. 나의 둘째에겐 까다로운 개취를 가진 걸신이 오시었다. 둘째는 저녁 메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잘 감춘 채 저녁을 조금 먹고 후식을 준비하는 사이 채널권을 빼앗긴 빡침으로 후식을 물리시었다. 1시간 뒤 빵에다가 치킨 커리를 먹겠다고 요청한다. 짜증을 참고 메뉴를 준비해준다. 30분 뒤 사과를 깎아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 최소 2개 이상이다. 8시. 나는 6시부터 저녁을 준비해서 먹고 2시간 가량 부엌을 드나들어야 하는 것에도, 반찬 투정을 긴긴 시간 공들여 하는 둘째에게 화가 났다. 이런 일은 반복되어 왔다. 셀 수 없이. 본캐 B 사감은 폭발하는 화를 억누르며 조금은 큰 소리로 이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참지 말고 지금이라도 분기탱천해보렴, 나의 하이드들아.(순서, 즉 나이는 사용량과 비례함)

왕언니 B나태 : 니가 깍아 먹으렴.

둘째 B방관: 뭐래니?

셋째 B소방 : 포만감을 향한 제3차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다. 니가 깍아라엥라엥라엥라엥.

넷째 B즐김 : 반찬투정도 어쩜 이렇게 지혜롭게 할까? 즐겁구나. 즐즐즐즐 사과 껍질이 깍여나온다.

다섯째 B명랑 : 와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겠다는 거야? 어쩜 이리 귀엽니.

여섯째 B살기 : 과도로 사과를 세게 내리쳐서 기절시킨 다음 과육을 거칠게 깍아 내려간다.

막둥이 B욕설 : 이런 옘병, 내가 왜 니 시중을 이 시간까지 들어야 하는데. 내가 종이냐?



지킬처럼 하이드를 감당 못해 생을 마감해야 할 생각은 누구도 없으리라. 새삥 하이드의 역습에 대비하라고 지킬이 먼저 비극을 겪어내준 거 아니겠나. 분열하지 말고, 각 성격에 생생한 존재감을 주고, 대화를 시도해보자. 나쁜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대화를 시도한다면 나의 밝음과 나의 화도 조화롭게 나이들어 갈 수 있으리라. 그것이 대화여도 좋고 글쓰기여도 좋으리라. 오늘의 나처럼.


200년 전 지킬의 열망과 좌절이 오늘의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준다. 고전은 오래되었으나 읽고 나면 여전히 새뜩한 새삥이다. 오늘의 내가 읽어서 소화한다면 그것이 새삥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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