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
”그 약물의 작용은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아니었어. 악마적이지도 신성하지도 않았지. 그것은 다만 내 기질이라는 감옥의 문을 흔들었어.“
첫째는 말했다.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어려워요. 화난 것처럼 말이 나가고, 나는 그냥 하는 말인데 사납게 들리도록 말하는 것 같아서요. 거절할 때도 세게 말하나 싶고”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첫째를 키울 때 엄마의 양육 태도는 아이에 대한 기대에 부푼 나머지 엄격하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과한 요구들을 해댄다. 동네 육아 친구와 함께 양쪽 집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를 갔다. 친구가 음료를 나누어주었다. 첫째는 음료를 마시더니 “맛 없어요”라고 했다. 당연한 반응에 나는 당황해서 집에 돌아와 아이를 혼냈다. 누군가 배려해서 준 음료에 그런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아이의 기질에 감옥을 만들어 혼란을 부추기는 아주 좋지 못한 방식이다.
나의 타이트한 훈육은 아래로 갈수록 헐렁해졌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당연하다. 일례로, 위험한 듯 위험하지 않은 계단이 있다. 아이는 오르고 싶지만 부모는 홀로 두기 겁이 난다. 첫째는 묻는다 “나 저기 올라가도 되요?” “안돼” 둘째는 좀더 단호하다. “저 올라갈 거예요” “안돼” 한다. 셋째는 어느 틈에 올라가고 있다. 허락을 받을 의사가 없으니 말릴 틈이 없다. “어머 거길 올라갔어? 대단하네”가 나의 반응이 된다. 첫아이도 둘째 아이도 그 계단을 더 잘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 타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법과 순응하는 법을 먼저 배웠던 것이다.
나의 헐렁한 양육관으로 셋째의 표현은 솔직하고 자유로웠다. 세배하는 새해 첫날 용돈을 받기 위해 절을 한다. 지금부터는 프로다워야 한다. 프로다운 첫째 둘째에게 덕담이 건네진다. “올해는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해라” “네”라고 첫째 둘짹 답한다. 셋째 차례다 “올해는 공부 많이 해라” 돈을 받으며 고개를 돌린 채로 말한다 “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가 말한다 “건강해라” “그건 가능할 것도 같아요” 건강하고 자연스럽다. 프로답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지킬은 부모의 육아 태도가 부자연스럽게 작용하게 마련인 첫째였을까. 그 부모는 모든 아이에게 같은 가르침을 유지했을까? 아니면 시대가 경직성으로 악명 높았던 빅토리아 시대였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희로애략 중 노와 애만 그를 피해갔던 것일까. 그의 하이드는 활약할 방법을 도무지 알지 못했다. 지킬의 견고함과 의지가 그를 뭉갰다. 그 전에 양육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 들이 지킬의 자연스럽고 다양한 감정들을 억눌렀다. 그러니 지킬은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거부하는 법을 모른 채로 자랐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의 기질을 감옥에 가두었더라도 아이는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과 만나며 그 감옥을 부수고 나오게 되어 있다. 간수가 올바름에 대한 편견이 심할수록 지킬처럼 불구의 하이드를 불러내게 되고, 스스로 공격하거나 타인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지킬의 비극은 하이들를 지나치게 숨겨서도 아니고, 하이드를 방관해서도, 불순물을 든 약제를 못 구해서도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명백하게 구별해 양분한 데 있었다. 약물은 지킬의 말대로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구별을 해제했던 것이니까. 좋은 것과 나쁜 것, 밝음과 어두움으로 세계와 나를 구별해 지키고 숨기는 등의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아이는 아이답게 여러 가지 감정을 표출하며 커야 자신의 하이드를 온전히 성장시킬 수 있다.
아이에게 격려한다. 일단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게 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음껏 표현해야 표현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고 알려준다. 당연하다. 화가 나면 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마음껏 표현해야 한다. 너의 무엇이든 사랑하므로 괜찮다고 격려한다. 하면 할수록 아이의 하이드가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육체를 부여한다면 함께 같은 몸을 사용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상대의 리액션을 신경 써야 한다면 그것은 차차 자신을 위해 노력하게 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사랑과 미움, 고뇌로부터 본다면 동시에 생성과정과 변화를 겪지 않는 존재란 하나도 없다. 생명이 있는 유기체는 생성을 겪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한에서만 실존할 수 있다.”
<소유나 존재냐>(까치) 47p
존재에게 부여된 생장과 변화를 지킬도 하이드도 함께 겪어내야 비로소 온전히 실존할 수 있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