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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Mar 02. 2023

타인의 얼굴은 중요한가

<프랑켄슈타인>

"그때 문득 고개를 든 나는 달빛에 비친 악마가 창틀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가 주문한 작업을 행하고 있는 나를 응시하는 그 입술이 소름 끼치는 웃음으로 주름 잡혔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얼굴에 악의와 배신의 표정이 한껏 드러났다."

 

이 비극을 마주하며 어디서 부터 바로잡아야 좋을지 읽는 내내 생각했다. 프랑켄슈타인이 연금술사들의 책을 읽었던 순간부터일까? 만물의 속성을 알아내고 변화시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했던 연금술사들의 책을 못 보게 하다니. 그건 프랑켄슈타인 학대지. 몹쓸 짓이다. 허용하자. 그렇다면 "그 존재"가 갑자기 깨어나 얼굴을 들이밀던 순간일까? 그때라면 살짝 꼬집어 말해줄 수는 있겠다. 프랑켄슈타인, 그 존재를 만드는 순간부터 첫만남을 준비했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아임 유어 파더"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하다못해 "하이" 정도는 건넸어야지. 이 마저도 갑작스러운 순간이었고 예상치 못했던 흉측함이었다고 항변한다면 넘어가 줄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환경에서 자라나 아름다움에 각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충격이 심했으리라. 첫 아이를 품에 안을 때도 당혹감은 찾아오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이 이브를 완성할 즈음 창가에 나타난 그 존재의 웃음과 표정을 마주하고 이브를 갈가리 찢어버렸던 순간은 어떤가. 이때다. 돌아가 고쳐야 한다면, 내가 개입해 프랑켄슈타인을 패준다면 바로 이때다. 그는 자신으로 고통받는 존재에 여전히 즉흥적으로 반응했고, 제대로 작동할 리 없는 얼굴을 왜곡했다. “그 존재는” 참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과 이브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논리적으로 피력했다. 많은 대화 끝에 이브를 만들기로 하고선, 창가의 얼굴을 제멋대로 해석한 뒤 배신했다. 프랑켄슈타인의 미적 취향에 맞는 흡족함을 주려면 어떤 표정이어야 할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얼굴엔 극대화된 만족감이 번득였다고, 표정은 사악함도 배반을 담은 것도 아니라고 하는 편이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은가.


자기중심적인 예민함은 타인을, 나아가 세상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나는 이 문제에서 해방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가족을 벗어나 만나게 된 친구나 선생님의 말과 행동 표정을 분절해서 기억하고 분석해 스스로 고통받았다. 타인의 1분이 왜 나의 하루를 장악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표정이나, 말들에 집착했다.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무디거나 하던대로 했을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상처는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복의 시작이다. 


그 웃음에는 만족감이 깃들었고, 표정에는 사악함도 배반도 담겨 있지 않다라고 했지만, 회복된 자아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게 된다가 중요한 지점이다. 프랑켄슈타인을 팰 일이 물론 아니다. 공감하고 알려주고 싶다. 그는 “그 존재”가 어떤 표정을 짓든지 과하게 반응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해야 마땅했다.(얼굴이 비호감인데 어떻게 호감으로 웃니, 게다가 역광 아니었겠니?) 이브를 만들거나 실패하거나(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딨나) 그도 아니면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주었을 애정을 나중에라도 주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이토록 재미난 비극은 사라지겠지. 부질없다.


“그랬더라면”만큼 부질없는 게 있으랴만 의외로 소용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앞으로 내가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무엇을 고치고 싶을까를 생각해보면 오늘의 선택이 더 무게를 갖는다. 더 즐겁다고 해도 좋겠다. 왜냐하면 더 좋은 걸 선택할 가능성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기록을 실행한다. 실망스러운 글이지만 몇 달 후에 나아진 나를 위해 말이다. 회복된 자아는 이 글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는 데 목적을 두는 거지 암.

 

*회복과 정신승리가 언제부터 동의어가 되었는가 하면,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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