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을 Feb 25. 2024

오땅은 사랑을 싣고

"오싹오싹 오땅"(05화 오싹오싹 오땅 (brunch.co.kr))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안다. 내가 얼마나 오땅을 사랑했는지. 2024년 설날 헤어진 오땅과 재회했다.


설날 제사는 우리집에서 차리고 부모님이 아침에 오셔서 함께 차례를 지낸다. 아침 9시 30분 부모님이 오셨다. 까만 양복에 정갈하게 차려입으신 아버님의 양복 주머니에 초록과 빨강의 알록달록 포장지가 반쯤 고개를 내밀고 있다. 30년 전 포장지가 타임슬립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저 포장지는 혹 나에게만 보이는 건 아닐까 염려 했는지 어머님이 아버님 허리를 찌른다. "빨리 주소, 지금 주소" 아버님은 모른 척 절하러 큰방으로 들어가신다. 차례가 끝나고 밥을 먹는데 아버님이 알록달록 선물을 꺼내신다. 아무래도 저건 오땅이다. 오땅도 나에게 올 것을 알았고 나도 오땅이 온 것을 알았다. 우리는어색한 사이인데.


"아가 줄라고 오징어 땅콩을 얼마 전에 샀는데 주려고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있더라고. 그래서 다시 오징어 땅콩을 사러 갔는데 큰 건 잘 안 팔더라고. 그거 찾아서 여기 저기 들러서 사왔다." 수줍은 듯 활짝 웃는 아버님은 사랑스러우시다. 몇 걸음 걸으면 도림천이고, 몇 걸음 걸으면 산이니, 산 넘고 물 건너 골라오신 오땅이다오땅과 헤어지고 뻥이요로 갈아탄 비밀로 하고 떠난 님이 돌아온 컨셉으로 기뻐한다. 


어머니와 갈등이 있을 땐 손을 잡고 "네 편이다."라고 말씀해주시던 아버님. 운전면허 필기시험 100점 소식에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땅에서는 우리 아가가 반짝인다"고 시를 보내셨던 아버님. 아버지보다 더한 사랑을 주신 아버님. 가만히 주는 사랑의 대표 주자. 


오늘은 아버님 생신이다. 아버님의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버님 생신에 오시는 친지들을 위한 생일상은 차리지 못하겠습니다. 친지들과는 두 분이서 준비하신 대로 식사하시고 저녁 땐 제가 준비한 아버님 생일상으로 가족끼리 식사해요." 어느때보다 정성스럽게 저녁상을 차린다. 나 좋자고. 내가 좋아야 모두가 좋으니까, 당연하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