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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18. 2024

엄마의 된장찌개 #1

또 다른 그리움

  스산한 바람과 여기저기 떨어진 낙엽이 깊은 가을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시댁 앞마당에 심어진 두 그루의 감나무에서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은 감이 열려 한 상자를 가져왔다. 여러 날 상온에 놓아두면 빨갛게 익어 홍시가 되는데, 딱딱한 걸 즐겨 드시지 못하는 친정 아버지는 이 감을 참 좋아하신다. 그래서 자동차에 감을 싣고 친정 부모님 뵈러 가을로 채색된 도시를 가르며 달려간다.


  두 노인네만 사는 집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다라이가 눈에 들어왔다. 용도를 궁금해하니 며칠 전 김치를 담갔다며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총각무 김치와 열무 물김치를 내보이신다. 적절하게 간이 밴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여든둘 엄마는 아직도 자식들 주려고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도 만드신다. 10여 년 전부터 생긴 마음의 병으로 늘 약을 달고 사는데 이렇듯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드니 기쁘고 고마울 따름이다. 

     

  어릴 적 엄마의 요리는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븐도 없던 시절에 동그랗고 커다란 양면 냄비를 연탄불에 올려 카스테라를 구워주곤 했는데, 갓 구운 빵 특유의 달콤하면서 고소한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양념치킨이 한창 유행할 땐, 화력 좋은 가스 버너에 닭을 튀겨내고 양념을 알맞게 버무린 다음 파인애플을 섞어 달콤한 치킨도 만들어 주었는데, 당시 시중에서 팔던 처갓집 양념통닭보다 맛이 좋았던 걸로 기억된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니 어린 시절 먹었던 맛있고 달콤한 음식보다 된장찌개나 묵은지 볶음과 같은 쿰쿰하고 아련한 맛이 그리워진다. 북엇국을 끓이기 위해 북어의 살을 바르고 나면 하얀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엄마는 이걸 잘 말려서 된장찌개에 넣었다. 지금은 동전 모양의 양념을 넣어 간편하게 국물의 맛을 낼 수 있지만 예전엔 북어가 엄마의 비법 레시피였던 모양이다.      


  된장의 맛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북어 껍데기를 넣어 끓인 순한 된장찌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어서 쉽게 숟가락이 가질 않았고 급기야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색깔이 화려하여 눈과 입을 사로잡는 김치찌개와 달리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이 쿰쿰한 된장찌개는 가까이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음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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