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한 모금
아주 먼 옛날부터 씨실과 날실을 엮어 세상의 모든 필요에 알맞은 직물을 만들어 왔듯이 나 역시 삶의 매 순간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는 없지만 딱 맞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여 왔다. 아름답고 화려한 직조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밤을 베틀에 앉는 수고로움이 필요했듯이 내 삶도 인내해야만 하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밤이 늘 함께 있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위안을 얻기 위한 아주 개인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달달구리 커피믹스에 대한 애착 행동으로 이어졌다.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에서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소품으로 병에 담긴 맥심커피와 프리마를 화면에 담기도 했는데, 1980년대 초기는 내가 달달구리 커피를 처음 만났던 즈음이기도 하다. 온통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혼란스럽지만, 이유 없이 재밌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그것은 뜨거우면서 부드럽고 쌉쌀한 단맛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향해 내달려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서 내용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성적이 중요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이 나라의 모든 고등학생은 노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강박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그 시절 한 학기에 두 번씩 치러지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학창 시절 내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공부를 핑계 삼아 오늘은 이 친구, 내일은 저 친구 집으로 몰려 다니며 공부했다. 친구들이 모두 모이면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을 넣은 커피를 사발에 따라 마셨고 이것은 우리의 의식이 되었다. 이 의식을 위해 다섯을 넘는 친구는 똑같은 모양의 그릇이 필요했는데, 지금이야 물건이 흔하여 언제든 필요에 따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귀한 손님이 올 때나 내놓을 수 있는 예쁜 꽃이 그려진 보기 좋은 커피잔은 우리의 차지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집에서나 넉넉한 국그릇인 사발로 커피잔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입이 넓은 대접은 우아하게 무언가를 마시기에 적당한 그릇이 아니다. 사발에 반 쯤 채워진 커피를 막걸리 마시듯 꿀꺽 소리가 나게 마셨고 그 모습이 너무도 우스워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거리느라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었다. 커피 한입 마시기는 학창 시절 내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공부에 대한 강박을 웃음과 단맛으로 바꿔주었고, 어른이 되어야만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커피의 세계에 동참하는 쾌감도 주었다.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의 수많은 밤을 달콤하게 지켜주었던 커피는 양손으로 받쳐야 마실 수 있는 따뜻하고 정겨운 낭만 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