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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애 Aug 18. 2023

플라세보 효과

밴드는 만병통치약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끔씩은 속상하고 힘든 날이 있습니다. 그날 그랬던 것 같아요.


“아이고, 머리야.”


두통이 심해서 나도 모르게 몇 번 그렇게 말 했던 것 같아요. 하늘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옆으로 다가왔어요.

“선생님도 머리 아파요? “

“왜? 하늘이 이제 머리도 아파?”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신의 팔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밴드들을 하나하나 바라봤습니다.




“아휴, 귀여워라.”

다른 반 돌봄 전담사들도 하늘이를 만나면 그렇게 말합니다. 하늘이는 어디서든 눈에 띌 정도로 참 귀여운 아이입니다. 얼굴도 예쁜데 말도 예쁘게 했지요. 모든 게 다 예쁘기만 한 이 아이에게도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니….



“선생님, 여기 아파요. “

“선생님, 저기 아파요. “

선생님… 여기도, 저기도, 요기도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아프다고요….

하루 종일 어딘가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계속 아프다고 합니다. 매번 보건실에 보냈고 학부모에게 연락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돌봄 교실에 오면 종일 내 치맛자락을 잡고 아프다며 따라다녔어요.

처음에는 너무 걱정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음…

하늘이에게 미안하지만,

조금 성가셨습니다.


매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들이 한 두 명씩은 꼭 있었습니다. 하늘이는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많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돌봄 교실에 있는 시간 내내 아픈 곳을 찾아낼 궁리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병원도 약도 아니란 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매번 관심을 나타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돌봄 교실은 한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선생님, 팔 아파요.”

“선생님이 팔 좀 주물러 줘야겠다.”

아이의 팔을 정성껏 만져줍니다.

“선생님, 팔에 밴드 붙여주세요.”

환자의 요청대로 팔에 밴드를 하나를 붙여줍니다.

“밴드 붙였으니 이제 안 아플 거야.”

“이제 괜찮아진 것 같아요.”

아이는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놀이를 합니다.


플라세보 효과(=위약효과) 라틴어로 ‘내가 기쁨을 줄 것이다,’라는 뜻. 약효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제공했을 때, 긍정적인 믿음이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이 호전되는 현상.


밴드는 신통방통한 만병통치약입니다.

이거 하나면 아이들의 아팠던 팔도 다리도 금세 다 나아버리니까요. 밴드 덕분에 칭얼거리던 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나는 약상자에 밴드가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가득 채워둡니다.



밴드가 이렇게 많으니 마음이 아파도 몸이 아파도 다 나을 수 있겠지요.


발, 다리, 손가락….

하교할 때쯤 이면 여기저기 밴드를 붙이고 있는 아이가 안타깝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나타내야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그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너무 바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아이가 옷자락을 잡고 아프다며 따라다니면…. 솔직히 많이 힘듭니다.




이 날은 두통도 심하고 이래저래 정말 지쳤던 것 같아요. 아프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하늘이를 위로하고 관심을 나타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늘아, 선생님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 친구들하고 같이 인형놀이 할래?”

나의 굳은 얼굴 (얼굴에 힘들다는 게 분명 표가 났을 거예요)을 보며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는 이제 팔은 안 아파요. “

하늘이는 팔에 붙어있던 밴드를 떼어 냈습니다. 하늘이는 작은 손으로 내 이마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만졌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뽀로로 밴드를 내 이마에 꾹 눌러 붙였습니다.



 “선생님도 이제 안 아플 거예요.”

세상 진지한 하늘이의 표정을 보니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내가 웃자 하늘이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됐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밴드를 붙이니 두통이 정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밴드는 정말 만병통치약이 맞는 것 같습니다.





끄적여 보는 생각쪼가리

종일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의사가 아니라 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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