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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애 Aug 09. 2023

별당 아씨도 괜찮지만,

저는 등대가 되고 싶습니다






돌봄 교실에는 냉장고가 있습니다. 오늘 냉동실 문을 열었다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텅 비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학식 전, 교장 선생님이 사주신 아이스크림입니다. 냉동실에 넣어둔 걸 깜박 잊고 있었지 뭡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있죠?

방학 때 돌봄 교실이 그렇습니다. 오전 7:4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동안 냉동실을 열어볼 틈이 없었습니다. 이 아이스크림을 보니 갑자기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누군가가 돌봄 전담사를 가리켜 별당아씨라 칭하더군요. 또 누군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고도 했습니다.


딱 들어봐도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지요? 종종 만나는 돌봄 전담사들이 신세 한탄하며 한 말입니다. 교직원들과 교류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상황이나 처지 때문에 그렇게 비유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야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돌봄 전담사는 반대 상황입니다. 아이들 오는 시간에 맞춰 오후에 출근합니다. 저는 연장근무를 안 해 5시에 퇴근하지만 다른 돌봄 전담사들은 7시에 퇴근합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있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할 수 없습니다.


또 많은 학교에서 돌봄 교실이 환영받는 존재는 아닙니다. 필요성은 있지만 같이 있기에는 아주 성가신 존재!




게다가 아이들은 돌봄 교실에서와 일반 교실에서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일반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약간은 긴장하고 있지요. 놀이 위주의 돌봄 교실에서는 감춰두었던 모습을 모두 내보이는 경우가 많답니다. 위험하고 엉뚱한 행동을 할 확률이 더 높아요. 그래서 돌봄 전담사는 아이들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습니다. 어느 때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관리자들도 저희에게 볼일이 있을 때 친히 찾아오실 정도니까요. 연가나 교육등으로 자리를 비워야 할 경우에는 꼭 대체인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교무실에도 거의 못 가고 교직원 모임이나 학교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음….

저는 이 부분에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근무환경이 좋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했었고, 아이 낳은 후에는 파트타임 일을 했습니다. 긴 시간이 든, 짧은 시간이든 힘들더군요.


일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말이죠.


특히 파트타임 영양사로 일 하던 어느 때인가는 종일 혀가 바싹바싹 타들어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조리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그들과 마음을 잘 맞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미소 지어도 속은 곪았지요. 그런 경험 때문인지 별당아씨가 편했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도, 외딴섬이라도 전혀 화나거나 속상하지 않았지요.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서는 저희 돌봄 전담사들을 별당아씨처럼 두지 않았습니다. 학기 초 돌봄 전담사에게도 몇 차례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주시더군요. 고충이 없는지 수시로 물어보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스승의 날에는 근사한 샌드위치를, 여름 방학 전에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교실로 보내 주셨습니다.


차라리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챙김을 받으니 좋았습니다. 겨우 4시간 일하는 사람까지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게 감사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집으로 가져와 한 스푼 떠먹어보았습니다.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기분까지 달콤해집니다.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처럼 마음이 말랑말랑해졌습니다.


난 이제부터 별당아씨가 아니고 등대할래. 소외되거나 못 어울리는 것이 아니야.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오늘도 굳건히 내 자리를 지키며 빛 비추는 등대.




끄적여 보는 생각쪼가리

큰 일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소한 일에 관심과 배려를 받으면 감동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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