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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Oct 14. 2023

"먼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로봇청소기 "그 놈"

독립을 한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독립을 해보니 하나부터 둘, 셋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했고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삶의 질을 가장 떨어트리는 청소와 맞닥뜨렸다.

제대로 된 청소기하나 없이 공기청정기 하나에 의지하여 먼지 없는 집에 살아보고자 나름 노력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마트에 갔다. 그리고 한참의 고민 끝에 제일 좋은 수입산 막대걸레와 정전기포, 물걸레포를 샀다. 한 손에는 수입산 막대걸레를, 다른 손엔 청소도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그 누구보다 비장했다.


"먼지와의 전쟁을 끝내러 왔다."


나는 곧바로 새로 가져온 장비를 뜯어 설명서를 읽고 곧바로 따라 했다. 청소포를 막대걸레에 정확하게 장착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막대걸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리고 그대로 오른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막대걸레를 앞으로 밀었다. 생각보다 가볍게 앞으로 밀렸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뒤로 밀려던 찰나 잊었던 작동법이 생각났다.

'아차, 청소포를 한 방향으로 밀어야 하지' 새로운 장비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시 오른손에 힘을 주고 손목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손목에 굉장한 통증이 느껴졌다. 곧바로 잡았던 막대걸레를 손에서 놓았다. 다시 나의 손목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탁'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막대걸레의 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후아' 이제 시작이었지만 나의 정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과의 전쟁은 시작한 터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막대걸레를 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다시 밀었다. 이미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나는 손목을 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리를 움직여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손목의 통증은 없었다. 성공적이었다.

나는 기세를 올려 조금 힘을 주어 바닥을 밀었다. 침대 밑도 예외는 없었다. 30분이 지났을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그 어떤 먼지도 없이 처참했다. 나는 조금 죄의식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 바로 거실로 나가 그 어떤 자비도 없이 적들을 몰살했다. 어느새 나의 이마엔 땀이 흘렀고 걸래막대를 잡고 있던 손도 땀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스스로 독립하여 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승리한 줄 알았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먼지들은 다시 생겨났다. 이번엔 그전에 죽였던 동료들의 복수를 다짐한 듯, 나의 코를 마비시켰고 재채기와 콧물을 흐르게 했다. 그리고 두 눈은 따끔했고 하루종일 비염에 시달렸다. 나는 다시 막대걸레를 들고 이곳저곳을 밀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증식했다.

칼과 활로 무장했던 항상 승리만을 했던 정예군이 처음으로 장총으로 무장한 적군과 맞서 싸울 때 느꼈던 무력감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점점 그들에게 잠식되었다.

2023년의 경술국치를 맞이한 나는 숨 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만 했다. 조금만 난리 치면 그들이 일어나 나의 콧속으로 들어올 테니.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문 앞에 내 몸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배달되었다.

나는 번뜩 무언가 떠올랐다. 얼마 전 처제가 최신 로봇청소기를 선물로 보내주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가슴속의 무언가가 뜨거워졌다. 도어록을 눌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이 모르게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고 현관에 놓았다. 가위를 가져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무언가가 하나씩 모습을 보일 때마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그것들 다 꺼내어 거실에 두었다. 설명서를 천천히 다 읽고 전원을 눌렀다. 곧이어 무언가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그것은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상태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스테이션으로 불리는 그곳으로 들어와 힘차게 걸레를 물에 적셨다. 그리고 스테이션에서 힘차게 발사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놈은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며 물을 뿌렸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에서 진행하는 이지스 시스템을 보는 듯했다. 겨우 장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어린아이 가지고 놀듯 손쉽게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물리치고 온 적들이 담긴 물통을 한 번씩 비워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놈은 알람을 울려 내게 말했다. 청소가 다 끝난 것 같다. 바닥을 살펴보니 반짝 빛이 났다. 그 빛이 나는 찰나의 순간 처제의 얼굴이 보였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처제는 역시나 남달랐다.


전쟁을 시작한 지 30일. 처제의 도움으로 나는 드디어 나의 집을 되찾았고 나의 생활을 되찾았고 나를 되찾았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장비와 힘을 갖추었다. 나를 해방시켜준 처제는 그 누구보다 든든했고 고마웠다.

 

오늘도 나는 힘 있게 돌아가는 그놈을 보여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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