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와 장수매』를 보고
『백두산 이야기』, 『노란 우산』을 쓴 류재수 작가가 2006년 발표한 그림책 『돌이와 장수매』는 분단의 아픔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황해도 지방의 옛이야기인 ‘장산곶매’에서 틀을 가져왔다. 작가는 사할린 지역을 여행할 때 일제강점기 때 끌려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났던 일을 씨앗으로 삼고 교사로 재직할 당시 가까이 지켜본 실향민의 한을 더하고 헤어진 누나와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탈북 어린이의 소망을 담아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강제 이주, 이산가족과 탈북민 이야기까지, 무겁다 못 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이야기를 작가는 마을을 지켜 주던 용맹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매 이야기로 옛이야기처럼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뒷산에 사는 장수매는 마을을 지켜 준다고 알려진 존재다. 장수매는 마을을 습격한 수리 떼를 물리치는데 이를 위협으로 느낀 원님이 겨눈 화살을 녹슬게 하는 등 영험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 돌이는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가 해적들에게 잡혀가 돌아오지 않자 낙담하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꿈에서 깨어 언덕에 올라간 돌이는 자신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는 장수매를 바라본다. 장수매는 돌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해를 향해 날아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표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주인공 돌이의 뒷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면지에는 ‘개미 아저씨를 추억하며’라고 쓰여있는데 개미 아저씨는 작가가 20년간 알고 지내던 실향민이라고 한다. 속표지에는 작가가 사할린에 갔을 때 장엄하게 다가왔다던 그 바다와 하늘을 그려 넣은 것 같다. <백두산 이야기>에서는 힘찬 붓질과 화려한 색을 사용했는데 이 그림책에서는 절제된 색과 묵직한 선으로 하늘과 바다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매를 그렸다. 판형이 약간 큰 편인데 가까이서 보기에도 좋지만 멀리서 보면 더 좋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을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그렸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일까. 장수매와 돌이가 마주치는 장면에서 돌이의 표정을 커다랗게 그린 점이 오히려 아쉬울 정도다. 가로로 긴 판형은 바닷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일하는 장면을 보여 주기에 적합해 보인다. 고깃배를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여인들과 아이들의 윤곽만으로도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마을에 수리 떼가 다가올 때, 마을 사람들이 먼 곳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빛과 그림자를 잘 사용해 불안한 앞날을 느끼게 한다. 글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과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간 배가 돌아올 때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먼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고 엄마 치맛자락을 잡은 돌이도 불안한 듯 서 있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웅성웅성 들리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세피아 톤이 돌아 빛바랜 사진을 보는 것처럼 아련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분단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내 아버지도 북에 두고 온 고향을 마음으로만 그리다가 돌아가셨다. 아주 가끔 고향 집 이야기를 하실 때면 눈이 반짝거리셨는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나는 헤아리지 못하겠다. 풀지 못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데 이 숙제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