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자장가』를 보고
시간이 지나야 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할 만한 것들. 그 가운데 하나는 부모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춘기를 험하게 겪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부모는 늘 같은 자리에서 사랑을 주고 지지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쓰고 그린 『할머니의 자장가』는 할머니를 회상하며 할머니의 삶을 천으로 기록한 그림책이다. 1911년에 태어난 할머니 홀다는 오스트리아에서 폴란드 우츠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츠는 방직공장이 많았다. 홀다도 그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처럼 공장에서 일했다. 홀다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면기저귀부터 집안 곳곳에 쓰이고 있는 천들. 삼베천을 깔고 빵을 찌고 면으로는 치즈의 물을 짜고 새벽에 공장에 출근하는 여자들은 모직 스카프를 두르던 때. 책표지도 캔버스 천으로 감싸고 점심으로 준비한 빵을 면으로 싸고 캔버스 천 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때이다. 작가가 오랜 시간 수집했다는 다양한 천과 일러스트를 결합해 아름답고 멋진 그림책이 됐다.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천으로 혹은 뜨개 소품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그림책작가가 된 손녀가 할머니를 생각하며 부르는 자장가라는 발상이 따뜻하고 좋았다. 할머니가 아기였을 때 잠들 때마다 들었던 자장가가 있었을 텐데 어렵고 힘든 시기를 살아온 할머니를 위해 손녀가 들려주는 자장가라니. 벨벳, 시폰, 자카드, 플란넬 등 추억 가득한 천조각을 보다 보면 우리 집 옷장 어딘가에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살 이전까지는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옷을 많이 입었었다. 기성복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그때는 시장에서 파는 옷을 입고 싶어 했다. 학교에 입고 가기에는 너무 차려입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엄마가 만든 옷을 입어서 놀림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철도 없던 때이니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었던 빨간색 코트는 사진 속에는 흑백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도 색깔뿐만 아니라 질감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기억에만 남아 있던 그 옷들 가운데 일곱 살 때 입었던 베이지색 줄무늬 원피스가 무슨 이유인지 엄마가 버리지 않고 가지고 계셨고 오빠가 결혼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조카들 옷에 섞여 있다가 올케언니가 아이들 옷을 물려준다고 보낸 다른 옷들과 함께 나에게 왔다. 그 옷을 본 순간 얼마나 신기하던지. 입기만 하면 내 몸에 맞을 것만 같았다. 딸애가 맞을 만한 나이가 됐을 때 한번 입혀보고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우리 집 곳곳에 엄마의 천들이 있다. 우리 집 식탁보는 엄마가 쓰시던 이불 안감이다. 흰색 천에 아주 조그만 파란색 꽃이 프린트되어 있는 천이다. 이런 천을 요즘 어디 가서 구할 수 있을까. 베란다에 놓던 작은 원형 테이블에는 엄마가 보자기로 썼던 레트로 느낌 물씬 나는 꽃무늬 천이 덮여있었다. 엄마가 쓰던 천들. 그때도 이렇게 귀하다는 걸 알 수는 없었을까. 그때 몰랐기에 지금 더 소중한 걸까. 이 마음을 담아 사랑을 주었던 세월을 다 뒤로하고 이제는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엄마를 위해 자장가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