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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봄 Nov 15. 2023

꼼꼼하게 그림책 보기 3

『땅속의 친구들』을 보고

수북하게 쌓인 하얀 눈 아래 땅속, 나무뿌리가 엉킨 자리에 겨울을 견뎌야만 하는 작은 벌레들이 모여 있다. 다만 차갑고 거칠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한 느낌이 드는 땅속이다. 열쇠를 들고 서 있는 애벌레를 중심으로 작은 벌레들이 모여 있는 표지 그림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벌레를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로 그려내다니! 표지에서부터 그림에 감탄하게 된다.


  『땅속의 친구들』은 겨우내 땅속에 사는 작은 벌레들 이야기다. 책 표지를 넘겨 면지를 보면 깜깜한 땅속에 지렁이가 낸 길이 독자를 다음 페이지로 안내하고 있다. 속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번째 장면에서 작은 벌레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려는 듯 서 있다. 이름을 말하고 사는 곳을 보여 주는 다섯 친구들, 엥겔링, 슈누프와 크누프, 로톨로 그리고 리아. 이름도 참 예쁘다. 다섯 친구들은 지루할 것만 같은 겨울 동안 땅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지낸다. 각자의 방식으로 모아 둔 겨울 양식은 이들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다. 그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리아의 방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양식이 필요 없다는 말에 친구들은 놀라고 리아는 양식이 없어도 되는 이유를 꿈을 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꿈을 꾼다면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까. 물론 안될 말이다. 하지만 꿈이 없는 삶은 또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된다.


  1988년에 스위스 작가 이블린 하슬러와 캐티 벤트가 쓰고 그린 이 책은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한국몬테소리 출판사 전집으로 소개 됐다. 그 후 2008년 미래M&B에서 『꿈에 하늘을 날았어요』 로 제목을 바꿔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단행본으로 다시 나온 이유는 이 책이 전집 속에서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책을 비교해 보고 나니 앞표지와 뒤표지의 연결과 면지에서 속표지로 이어지게 그림을 살린, 양파라는 번역 대신 알뿌리라는 말로 나중에 무엇이 될지 궁금하게 한, 알뿌리가 꽃으로 피어난 장면에서 아름답고 섬세하게 봄을 묘사한, 하늘을 날고 있는 리아를 엥겔링이 만나는 장면에서 밤하늘의 신비로움을 보여 준, 다섯 친구들의 이름을 독일어 그대로 살려 개성을 부각한 한국몬테소리에서 나온 책에 더 애정이 갔다.


 다섯 친구들이 사는 땅속 세상은 어둡지 않고 오히려 밝고 따뜻하다. 서로를 아껴주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던 리아는 봄이 되어 정말 날게 된다. 애벌레가 시간이 지나면 날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뭔가가 더 있다. 그것은 간절히 원하면 꿈은 결국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독자도 하게 만드는 힘이다.  외롭고 지루하고 심심할 수 있는 추운 계절에 카드놀이를 하며 보내는 다섯 친구들 모습에서 겨울이면 뜨끈한 방구석에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어릴 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엥겔링과 슈누프와 크누프, 로톨로 그리고 리아가 있는 곳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따뜻하고 푸근했다.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땅속 세상 이야기에 마치 우리도 그 일부인 양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 만점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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