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한증 환자의 기록
난 다한증 환자다.
손, 발, 겨드랑이에서 주체되지 않는 땀이 자주 난다.
겨울은 가장 힘든 계절이다. 두꺼운 외투로도 해소되지 않는 추위와 흥건한 손발은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 기분을 준다. 위아래 치아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운데도 땀은 멈추지 않는다. 실내에서 신발을 벗으면 양말은 세탁기에서 막 꺼낸 것과 더러운 웅덩이에 빠졌던 것의 중간 어디쯤이다. 습기도, 더러움도 그쯤. 새 신발도 며칠 지나면 악취가 밴다. 베이킹소다를 뿌려 말리면 그럭저럭 보통의 신발로 돌아온다.
여름은 그나마 낫지만 샌들이나 슬리퍼 바닥이 땀에 미끄럽다. 모르는 사람들은 물놀이를 막 다녀온 줄 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는 물기 어린 발자국을 남긴다.
샌들을 신고 경사진 길을 오를 땐 발바닥과 밑창이 붙질 않아, 밧줄을 타고 올라가듯 무언가에 기대어 걸어야 한다. 남편과 여행 중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말 한마디 섞지 못할 만큼 다투던 날이었다. 샌들을 신은 나는 결국 남편의 팔짱을 잡고 올라야 했다. 그 순간의 체온이, 말보다 오래 남았다.
엄마 말로는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손발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고 했다. 스스로 처음 인식한 건 유치원 재롱잔치 때. 양옆 친구들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해야 했다. 아무리 씻어도 마르지 않는 내 손이 싫었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옆 친구의 손을 힘없이 잡았다. 친구는 축축함에 흠칫했지만 뿌리치진 않았다. 우리는 노래에 맞춰 빙글빙글 돌았다. 몇 바퀴쯤 돌았을까. 발밑이 미끄러지며 넘어진 순간, 그 손을 놓쳤다. 깜깜한 구석에서 엉엉 울었다. 아파서였을까,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내 손이 부끄러워서였을까. 내 손이 젖어 있지 않았다면, 옆 친구들은 내 손을 더 꼭 잡아줬을까.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땀이 나더라도 양옆 친구들의 손을 더 꽉 잡으리라.
학교에 가서는 책과 공책이 자주 젖었다. 얇은 갱지 시험지는 내 땀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찢어지곤 했다. 책받침과 손수건을 번갈아 받치고, 땀이 차면 닦고를 반복했다. OMR 카드도 마찬가지였다. 빨간 플러스펜은 번져도 괜찮았지만 검정 펜은 번지면 안 됐다. 땀으로 번진 OMR 카드를 바꾼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땀 덕분에 좋았던 일도 있다. 중학교 때 ‘귀밑 3cm 단발’ 규정이 있었는데, 숱 많은 내 머리가 늘 얼굴 앞으로 쏟아졌다. 젖은 손으로 자꾸 머리를 만지는 내 모습을 보던 선도부 선생님이 “묶어도 된다”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고, 나중에 들으니 어떤 친구들은 내가 무용을 배우는 줄 알았다고 했다.
연애할 때 남자의 손이 다가오면 먼저 말했다. “다한증이라 손에 땀이 나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 사람들 중 누구도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불쾌할 텐데도 거리낌 없이 손을 잡아주던 그들에게 내가 마음을 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 축축한 손을 가장 세게 잡아주었던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아이가 어느 날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손은 따뜻해서 좋아.” 나는 반사적으로 “축축하지?”라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더 꼭 쥐었다. “그래도 좋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이 물기가, 누군가에게는 온기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도 땀이 난다. 키보드 위에는 이슬처럼 물기가 맺혀 있다. 고장 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땀이 마르고 하얀 소금이 남는다. 얼룩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흔적처럼.
끈적한 땀에 젖었을지라도, 마른자리에 소금이 남듯 나의 시간에도 무언가 단단한 게 남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물기조차 온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도, 젖은 손으로 나는 또 잡을 것이다. 나를, 너를,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