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듣고 싶은 한 마디
아이의 미래를 떠올릴 때마다, 늘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처럼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직업은 정부 산하 사단법인에 속해 있다.
공무원법을 따르며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변화도 적다.
의료계나 로스쿨, 고시를 통과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연봉도, 사회적 인정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목고를 나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황의 시간은 길었고, 남은 건 낮은 학점뿐이었다. 결국 학점을 보지 않는 공공기관으로 취직했고, 그 뒤로 오랫동안 “돈 때문에 하는 일” 속에서 살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아이들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만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깨달은 건 하나였다.
나는 결국 부모님을 많이 닮았다는 것.
어릴 땐 “엄마 아빠처럼은 안 살 거야”라며 다짐했지만 지금은 내 안에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언젠가 나와 남편을 닮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 언젠가 내 아이가 “엄마처럼 살고 싶어”라고 말해주길, 그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아이 유치원에서는 매년 가을, 부모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다.
일하는 부모가 평일에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라 보통은 자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 역시 매년 거절했다.
“아이들이 흥미 없어할 직업이에요.”
“뭘 보여줄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둘째의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생각이 바뀌었다.
육아휴직 중이라 시간 여유도 있었고,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발표일이 다가오자 괜히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왜 굳이 자원했을까. 그냥 조용히 넘어갈걸.’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하루하루 자료를 준비했고, 일주일 전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스크립트를 외웠다. 발표 당일 아침, 아이 앞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물었다.
“How was it?”
아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Just amazing!”
이 말에 힘이 났다.
그날 아이는 유치원에서 날 보는 순간부터 내내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Today was the best day ever!”라며 싱글벙글 웃고,
아이 친구 중 한 명은 “너네 엄마가 the best mom이래”라고 했다며 자랑했다.
나는 그 아이 친구의 이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발표 하나로 인생이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일에 대한 태도’는 달라졌다.
나는 내 직업을 늘 하찮게 여겨왔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남편 사업만 잘되면 그만두겠다고 수십 번 다짐했다.
그런데 아이의 눈빛 하나가 모든 걸 바꿔놨다. 내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니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달라졌다. 휴직 중이라 회사 스트레스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돈이 필요해서 일하거나 돈이 필요 없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사실에 내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복직을 하면, 더 친절한 동료가 되어야겠다.
내 일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말해주길 바란다.
“엄마처럼 살고 싶어.”
그 한마디면, 지금의 모든 시간이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