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을 읽고.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꽤 가지는 편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 세상에 익명이라는 개념만 없다면 온라인에 판을 치는 면대면으로 입에 담기 힘든 언어들과 그 원천이 되는 생각조차 원래 없었던 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식이다. (물론 반박 시 당신들 말이 대체로 맞을 것이라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간실격>을 읽다보면, 인간의 속성을 다 꿰뚫어보는 듯이 구는 거만함을 자기연민으로 포장하는 요조의 모습에 대체로는 역겨움이 느껴지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든다. 그래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구체적으로 짚기는 어려워도 분명 공감대는 있는 듯하다. 글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으레 내가 가진 다름을 특별함으로 치부하며 나를 제외한 세계를 일반화해버리는 경험이 있지 않은가. 다 똑같으면 기대가 없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행복도 없다. 행복은 전위라 했기에.
다만 ‘인간실격’하지는 말아야 하니, 어떡하나? 사람이 싯다르타가 아니고서야 기민해봤자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관통할 수는 없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누군가가 늘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빨리 깨닫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자기객관화를 통해 깨닫는 스스로의 부족함은 분명 사람에 대한 기대를 회복시키는 탄력성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요새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듯 해서 아주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근데 때론 바보처럼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는 게 꽤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