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가장 매력적인 번짐
...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
시인 장석남 님의 "수묵정원 9-번짐" 중 일부이다.
고등국어수업을 준비하다가 '번져버린' 작품을 만났다.
곤란하다. 이러면 수업 준비가 늦어지는데 말이다.
수업 준비는 한쪽으로 미루고 글에게 대꾸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사뿐히 와닿는 글귀를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아이처럼 한 글자 한 글자 꾹 꾹 눌러 담아 노트에 적는다.
작년에 읽었던 책 중 인상 깊었던,
최인철 교수님의 책 "프레임" 중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타인, 가장 매력적인 정답.
나의 프레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내가 누구에게 둘러싸여 있느냐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경험한다.
집과 회사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
엄마 앞과 친구 앞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
자녀 앞과 상사 앞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위장술에 능하며 이중인격자라는 표지가 아니라
상대에게 번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번짐'
나는 지금까지 이 단어를
일이 의도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선지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눈물 때문에 화장이 번지다.
손에 스쳐 글씨가 번지다.
나쁜 소문이 마을에 번지다.
화재가 위 층까지 번지다.
하지만 장석남 님의 시에서는 '번짐'이라는 단어를 아름답고 경이롭게 사용했다.
역시 단어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사람의 관계를 '번짐'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니 그동안 뿌옇던 '관계'라는 단어가 명징해졌다.
이것이 내가 글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명징하게 하는 힘.
번졌다.
의도하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상처받는 자가 흔히 하는 왜곡된 생각은 '일부로, 의도적으로, 계산적으로'
상대가 나에게 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피해자일 뿐,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이 그렇게 매 순간마다 치밀하고 똘똘한 존재가 못 된다.
'어쩌다 보니, 생각과 다르게, 그냥 별생각 없이' 번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번진 글자 하나 때문에 종이를 찢어버리진 말자.
약 삼키듯 꿀꺽 넘겨버리는 것은 어떨까?
물론 목 넘김이 불편한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글자보다는 그 글자 안에 담긴 글의 전체적인 의미가 아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이 번진다.
그것이 기본값이다.
안 번진다면 의심해야 한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맞나?
혹시 죽어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은 아닐까?
그 번짐이
결국 아름다운 나만의 고유한 무늬가 될 것이니.
그리고 그 무늬는
나의 일상과 너의 일상에서 줄기차게 행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