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졸음이 많은
마흔을 훌쩍 넘겨
사춘기 아들을 둔 나는
대표 기도가 끝나고 설교자가
첫마디를 떼기 무섭게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는 데서
졸기 시작한다.
설교의 시작에서 축도까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메시지에도 아랑곳없이
앞으로 옆으로 꾸벅꾸벅 존다.
몽롱한 귓전으로 아브라함의 축복과 헐몬 산의 이슬이
예배당 안에 가득해도
이십 대의 그 모습으로
나는 졸고 있다.
그래도 저 졸음은
고열로 밤새 뒤척이던
아내를 돌 본 시간이고
늦은 밤 지새우는 수험생 아들을
시중든 시간이야
아니야 아니야 손톱 밑 까맣게
살아온 삶의 무게일 거야.
고단한 삶이 쓸고 간
인생의 긴 강변에서
졸음 속에 흔들리는 갈대의 인생
청결한 가위 끝에 잘린 백합 향기
헐떡이며 살아온 나의 뉘우침은
찬란하게 동터 오는 부활의 아침에도
속죄와 위안의 고갯짓을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