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밀어내기
등화관제가 있었던 때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
전기를 끄고
어두운 거실에 둘러앉아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며,
새로 전학 온 친구며,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를 이야기하며
부모의 따뜻한 가슴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빛은 멀고
하루 일과를 마친 우리는 모두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밤에 절망을 뒤적거린다.
TV에서는 십 대 소녀들이
쓰러질 사람처럼 춤추며
숨 가쁘게 노래하고
컴퓨터 속에는 타인의 절망을 디디고
우뚝 선 용사들이 왕궁을 차지하려
무덤을 오르내리고
재벌 집 아들과 청순한 소녀의
회오리 같은 사랑 얘기에 넋을 빼앗기면
문득 창가 가득히 눈이 내리고
뱀처럼 굽은 눈 쌓인 언덕길을 내려다보며
불꽃같은 삶을 다짐하던
내 청년의 서늘한 눈빛이 퍼뜩
뇌리를 스쳐간다.
이대로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눈 쌓여 비탈진 언덕길에
함부로 차여 바닥에 깔리는
창백한 연탄재로
살아갈지도 몰라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
전기를 끄고
어두운 거실에 둘러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촛불을 밝혀
시대처럼 다가온 어둠을
창밖으로 밀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