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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May 07. 2024

어둠 밀어내기

   어둠 밀어내기    

 

등화관제가 있었던 때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

전기를 끄고

어두운 거실에 둘러앉아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며,

새로 전학 온 친구며,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를 이야기하며

부모의 따뜻한 가슴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빛은 멀고

루  일과를  마친  우리는 모두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밤에 절망을 뒤적거린다.     


TV에서는 십 대 소녀들이

쓰러질 사람처럼 춤추며

숨 가쁘게 노래하고

컴퓨터 속에는 타인의 절망을 디디고

우뚝 선 용사들이 왕궁을 차지하려

무덤을 오르내리고

재벌 집 아들과 청순한 소녀의

회오리 같은 사랑 얘기에 넋을 빼앗기면

     

문득 창가 가득히 눈이 내리고

뱀처럼 굽은 눈 쌓인 언덕길을 내려다보며

불꽃같은 삶을 다짐하던

내 청년의 서늘한 눈빛이 퍼뜩

뇌리를 스쳐간다.     


이대로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눈 쌓여 비탈진 언덕길에

함부로 차여 바닥에 깔리는

창백한 연탄재로

살아갈지도 몰라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

전기끄고

어두운 거실에 둘러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촛불을 밝

시대처럼 다가온 어둠을

창밖으로 밀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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