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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Jul 05. 2024

21 가자 홍콩(香港, HongKong)으로!(2/2)

로!(1/2)

        

  홍콩의 스카이라인이 만들어낸 화려한 현대식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이 도시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높이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들은 홍콩의 막강한 경제력과 금융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홍콩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대 금융 중심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증권거래소와 은행, 보험사 등이 밀집해 있어, 수많은 국제 기업들의 아시아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위는 홍콩의 특별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1842년부터 156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역의 거점이자 국제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은 점차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에 따라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중국 대륙과의 연계가 강화되었었다.

  이에 따라 홍콩은 아시아 금융·무역의 핵심 거점으로서 더욱 부각되었다. 홍콩항은 세계 3대 컨테이너항 중 하나로, 막대한 물동량을 처리하며 국제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의 상장 및 자금 조달 플랫폼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홍콩은 영국 지배 시대부터 이어져온 국제 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과거의 영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빅토리아 피크의 웅장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한 뒤, 우리는 보타닉 가든으로 향했다. 이곳은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로, 다양한 열대 식물들이 가득했다. 보타닉 가든으로 들어서자, 푸르른 자연 속에 완전히 둘러 싸인 것 같았다. 울창한 야자수와 열대 꽃들이 가득했고, 조용한 산책로 사이를 여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울창한 공원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와, 이렇게 울창한 숲이 홍콩 시내 한복판에 있다니 믿기지 않네요. 정말 아름다워요."     


   아들이 감탄했다. 이 평화로운 공간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여행의 피로를 풀고, 녹음과 새소리가 주는 자연의 위안을 누리며 쉬었다.     

  보타닉 가든을 둘러본 뒤, 우리는 스탠리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위태로운 좁은 도로 아래로,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초록의 야자수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이곳은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 중 하나로, 다양한 기념품과 토산품들을 팔고 해변을 바라보는 음식점과 레스토랑이 보기 좋게 자리 잡은 해변가이다.

  스탠리 시장은 좁은 골목 사이로 수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관광객들과 흥정하는 주인들의 유쾌한 목소리로 떠들썩하고, 활기찬 분위기에 휩싸여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 홍콩의 도시 곳곳은 여전히 영국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영국식 건축물과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심가의 고층 건물들은 유럽풍 디자인을 자랑했고, 영국식 전통 가옥들도 곳곳에 남아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고, 교통 체계뿐 아니라 사회시스템도 영국식으로 운영되었고,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들은 내가 중국인이냐고 물으면, 자신을 홍콩 사람이라고 고쳐 말했다. 영국에 대한 향수와 우호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   

  하지만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 홍콩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도시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풍 건축물과 간판들이 늘어났고, 중국의 인재들이 홍콩의 금융계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표준중국어의 사용이 증가했다. 정부 차원에서 중국어를 학교 교육에 의무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의 진출로 도시의 분위기가 점점 달라졌다.     

  그래도 홍콩만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은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전통 시장과 골목길, 그리고 향토 음식점들이 여전히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요즘 홍콩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홍콩 정체성" 논의가 뜨겁다. 그들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홍콩만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도 강하다. 이런 모습들이 홍콩 사회의 균열과 우산혁명과 같은 극단적 충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영국식 유산과 중국의 영향, 그리고 현대적 발전이 공존하는 이 도시는 계속해서 변화와 정체성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음은 유명한 영화 <중경삼림>의 촬영지인 청킹맨션을 찾아갔다. 청킹맨션은 당시 홍콩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195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오랫동안 도시 빈민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1990년대 초반 영화 촬영 당시에는 이미 노후화되고 불량한 주거 환경으로 인해 철거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왕가위 감독은 청킹맨션을 통해 홍콩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방향을 잃어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당시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청킹맨션은 낡고 빈곤한 공간이자, 도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어 가는 계층의 모습을 대변하는 장소였다.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듯, 청킹맨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개보수를 했다. 홍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을 둘러보며 영화 <중경삼림>의 주제와 메시지가 더욱 깊이 있게 와닿았다. 그 시간 속에 내가 함께 있었던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좁고 낡은 골목길을 들어가니 작은 간판이 보였다. '사바우 딤섬'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평범하고 오래된 작은 작은 가게였지만, 5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딤섬집으로 유명했다. 이른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다양한 종류의 딤섬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는데, 더듬더듬 한자를 읽어도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는 한자를 추측해서 새우, 돼지고기, 야채 등이 쓰인 딤섬을 식탁 위에 가득 쌓아 올렸다. 대략 새우 딤섬, 돼지고기 딤섬, 버터구이 딤섬, 닭발, 부추 등이 있었다. 각각의 요리마다 독특한 맛과 식감을 자랑했는데 대부분 입맛에 맞았고 맛있었다.

   새우 딤섬을 앞에 두고 천천히 한입 베어 먹어보았다. 촉촉한 만두피 속에 새콤달콤하고 탱글탱글한 새우 소가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풍부한 맛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샤오롱바오의 맛도 기가 막혔다. 만두소는 다진 고기와 함께 육수가 들어간다. 육수를 피안에 넣는 방법은 육수를 식혀서 젤라틴질로 굳힌 다음 피로 싸서 쪄내서 녹인다. 만두피는 아주 얇게 만들고  만두소는 보통 돼지고기 다진 것을 사용하지만,  간혹 새우 간 것을 넣기도 한다. 샤오룽바오를 덜컥 먹었다가는 입을 데기 십상이다. 제대로 먹는 방법은 숟가락에 올린 후 젓가락으로 만두피를 찢어서 육수를 빨아먹은 후 먹는 것이다. 돼지고기 딤섬 또한 맛깔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풍부하게 느껴지고, 속재료와 피의 조화가 훌륭했다. 버터구이 딤섬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곁들여 마신 보이차와 재스민 차의 은은한 향기와 깔끔한 미감이 딤섬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각각의 요리와 차 맛이 잘 어울려  먹는 기쁨이 배가 됐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허름하고 작은 딤섬집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맛을 주었다. 홍콩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겠다. 진정한 맛집은 사실 이처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뒷골목에서 찾아야 한다.  


   홍콩에서의 며칠은 우리 가족과 나에게 여행 이상의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한국에서 나는 부지런하게 살았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에서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 울컥 공감했다. 그 시대의 가장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왔겠지만, 이 구절에서 나는 유독 상념에 빠졌었다.  한국에서의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고단한 삶의 반복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많은 일을 벌여 놓았지만 어떤 것도 마음에 기쁨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뛰쳐나오듯 탈출한 중국 T시는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성공적인 일탈이었을까? 나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설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렸고, 그때마다  그분은 내게 길을 내 주셨다. T시에 살면서 나는  뭔가 아련한 향수를 느꼈다. 처음 T시에 도착했을 때, 197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이 땅을 거닐었고, 내 유년 시절이 마치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묘한 착각이 일면서, 나는 그 낯선 땅에 이내 친숙해졌다. 메마르고 황량한 땅, 황사바람, 무채색 도시의 한가하고 텅 빈듯한 주변 환경들, 그 속에 흑백 필름처럼 순박한 표정과 거짓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 이 모든 것이 좋았다. 휴일 이른 새벽이면 아내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텅 빈 16차선 도로를 질주하며 탄성을 지르고, 재래시장에서 바구니 가득 과일을 채우고 갓 구운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즐거운 일상이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 미래에 대한 고민과 열정 그들과의 진지한 교감, 이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봄이 오면서  원치 않은 손님이 불쑥 내 앞에 섰다. 황사였다. 나무도 적고 산도 없는 T 시에 몰아닥친 모래 바람은 수개월 내내 계속됐고, 한밤중에도 창문틀을 뒤흔들고, 아침이면 창틀과 책상 위에  곱고 노란 가루와 모래가 수북했다. 아침 출근길에는 마스크와 고글을 썼다. 5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고, 고글에 모래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출근길을 걸어야 했다. 황사 이후로 T시에서의 일상 대부분이 마비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홍콩은, 그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였다.

이 말은 이백(李白)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구절이다.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에 인간 세상이 아닐세


  별천지가 있는데 인간 세상이 아니다는 뜻으로, 특별히 경치가 좋거나 분위기가 뛰어난 곳을 이르는 말이다.

홍콩을 본 내 머릿속에 섬뜩 떠오른 구절이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호흡기가 약한 나와 아들은 지난 몇 개월을 T 시에서 숨 가쁘게 지냈다. 그 당시는 마스크도 일상화되지 않아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고글을 끼고 학교를 오갔고, 황사가 잦아들어야 외출할 생각을 했다.


    홍콩의 도심지와 뒷골목, 바다와 산을 다니며,  나는 막연히나마 홍콩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의 눈부시고 현란한 여행지와 낡고 남루해 보이는 주택가와 뒷골목, 해안가를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 트레킹 코스들을 누볐던 며칠간의 인상 깊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홍콩의 축축한 공기와 묘한 냄새 그리고 다채로웠던 풍경을 가슴에 품고 홍콩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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