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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Jul 19. 2024

23 T시의 절벽 위에 서다!(2/3)

  멘토가 될 관리자를 만나다

 내가 P교장을 눈여겨본 은 이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 에 일어났다.  L군의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왔고 교장실에 마주 앉았다. 사건은 이미 파국의 국면이어서 서로의 감정을 오히려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논쟁할 일만 남았다. 교장실의  공간은 숨 가쁜 정적으로 위태롭고 불안했다. p교장이 애써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자, 어려운 자리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차 한잔 드시고 천천히 얘기하시지요. K군 아버님이 먼저 얘기해 보시지요.”

   “학생에게 폭언을 하고 손찌검하는 선생을, 학운위위원장이기에 앞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S선생은 중징계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모욕적 언사를 한 K 선생징계해야 합니다.”      

   

  L군의 아버지는 얘기하는 중에 그때 일이 기억났는지, 얼굴이 벌게져서 작정하고 분노를 쏟아냈다. 그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벽시계 소리가 들릴만큼 정적이 흘렀다. 길게 숨을 쉬고 나서 P 교장이 말문을 열었다.      


  “음~. 위원장님,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L 군의 아버지가 예상 못했다는 듯 멍하게 쳐다봤다.      


“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말입니다. 저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당장에 뛰어 들어가, 뺨을 후려쳤을 겁니다. 선생이 잠을 깨우고 게임을 못하게 했다고, 욕설을 퍼붓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자식을, 그대로 두면 그게 선생입니까? 누가 누구를 징계합니까? 어디 맘대로 해보세요. 하실 말씀 다하셨으면, 이만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P교장은 고개를 꽃꽂이 세우고, L군의 아버지를 똑똑히 보고 말했다. 그날의 회의는 예상외로  너무 짧게, 맥없이 끝났다.      


  L군의 아버지는


   “이것들이 다 한통속이구만, 그래, 어디 두고 봅시다! 누가 이기나 보자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그는,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닫고, 씩씩대고 나갔다.      

  L군의 아버지는, 그 후에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T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해나갔다. 자신의 신문에 학교와 교장과 교사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기사를 싣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상공회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논쟁의 한가운데 선, 같은 아파트에 사는 S 교무부장과  마주 앉았다.


   “하참~. 그 인간 어지간하게 모질게구네. 나는 어차피 내년이면 돌아가야 해. 한국 학교 재단에서도 근무 연장이 어렵다고 연락이 왔고, 단지 이런 일로 짧리는 것 같은 분위기로 그만두니 폼이 안나잖아. 에이~ 참”

  “ 저도 그만 둘 생각이에요. 이곳이 싫어졌어요.”

  “하참~. K 선생은 사실 이일과 무관한 사람이야. 온 지 1년도 안 됐고, 그런 소린 하지도마. 그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나는 이 일의 주변인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이름도 이 사건에 함께 오르내렸고, ‘법 대로 안되면 뒷골목에서 뒤통수 조심하라’는 L 군의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도 매스꺼웠다.      

  다행히 이 사건은 빠르게 수습됐다. T시의 한인상공회 회의가 우리 학교 회의실에서 열렸고, L군의 아버지에게 사태를 수습하고 자신의 신문에 학교와 해당 교사들에게 사과글을 올리라는 최종 결의를 했다.

  그리고 사직 의사를 이미 밝힌 나를 그날의 회의에 불렀다. 30여 명의 T시 상공인들이 모여있었다. 회장이 말했다.


  “K 선생님, 말도 안 되는 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S 교무부장 선생님은 어차피 한국으로 귀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K 선생님마저 가시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이 상하셨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남아 주십시오.”

  “저는 한 번 마음이 정해지고, 마음이 떠나면 그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나는 다음 계획도 준비하지 않고 학교에 사직을 공식화했다.


   다음 날 P교장이 불렀다.


  “  K 선생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학교 형편상 K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모두 정리됐으니 함께 일합시다.”

 “ 교장 선생님의 관리자로서의 대처 방법에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났습니다. 사직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일주일 뒤에도 같은 마음인지 얘기해 주세요. 사직서는 그냥 가지고 있겠습니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나는 교장실에 가서 마음이 변함이 없음을 알렸다.

P 교장은      

 

  “삼세번이란 말이 있지요. 일주일만 더 생각하고 오세요. 2년 계약 중에 1년만 하고 돌아가시면, 행정상 여러 가지 페널티가 있을 수 있어요. 다시 한국의 원적교로 돌아가셔야 하고, 여러 가지 손해가 많을 거예요. 다시  1주일만 더 생각해 봅시다. 그때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안 잡을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한국을 떠나올 때의 그 많은 절차와 번거로운 일들이 떠올랐다. 차도 집도 팔고, 환송회도 여러 차례하고 떠들썩하게 나왔는데, 1년 만에 맥없이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곳에서 마음이 떠났다. 머리로는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은 이미 냉랭해졌다. 나는 공식적으로 최종 사직을 결정했고, P 교장도 더 이상 잡지 못했다. 함께 있던 행정 실장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  K 선생님이 이미 이곳에 마음이 떠났으니 보내줍시다. 빈 껍데기 잡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요." " K 선생님, 1년만 근무하시니 왕복 항공료와 제반 제공비용(정착비, 호텔비, 비자비용 등)을 토해 내야 하지만, 교장 선생님이 교육부에 이곳 현황을 설명해서, 행정상 문제없는 사례로 적용했습니다. 돌아가는 항공료도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꼼꼼히 챙겨서, 안전하게 돌아가십시오.”     


  이 사건의 불똥이, 내게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약 한 달간 대여섯 차례 만났던 악의에 찬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기적인 인간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물론, 내게도 확고한 원칙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과도한 반응을 보여도, 난 어떤 분노나 원망도 하지 않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자녀는 그들의 분신이고, 목숨도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L군의 부모나 L군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사람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가득 배어있는 학교, 고성이 오갔던 교실과 교무실, 그 공기와 긴장된 분위기, 분노의 눈빛이 가득 찼던 곳에서 처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L군의 부모가 사람들을 몰고 학교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할 때마다, 다툼은 교무실을 나와서 복도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나 창가, 복도에서 거친 말과 삿대질을 해대는 우리 어른들을 둘러서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던 그들의 눈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다툼이 있던 날 교실에 들어가서, 거짓 웃음을 지어가며 수업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렇게. 나는 1년 만에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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