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누군가의 삶 위에 놓일 때

쓰레드에서 본 가난 밈을 새해에 다시 생각하다

by 아우리

새해가 되면 우리는 더 나은 계획과 목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웃고, 무엇에 무심해졌는지에 대한 감각입니다.

2026년의 첫 번째 <햇살아래 생각한조각>은 크게 다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의 웃음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타인의 삶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기를 조용히 제안합니다.

새해의 시작을 조금 더 느린 질문으로 열어봅니다.


SNS에서 먼저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마음을 가볍게 정리하던 시기였습니다.

김밥과 라면 사진 옆에 놓인 명품 가방이나 외제차 열쇠, 그리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중'이라는 문구.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한 채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며칠 뒤 언론을 통해 그것이 '가난 밈(Meme)'이라 불리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불편해졌습니다.


가난을 흉내 내는 방식

기사 속 장면들은 며칠 전 봤던 익숙한 구도였습니다.

편의점 도시락 곁에 놓인 명품 지갑, 좁은 자취방인 척하지만 슬쩍 보이는 1등석 티켓. 문장은 '지독한 가난'이라고 말하지만,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정반대입니다. 가난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여유를 과시하기 위한 농담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웃음의 장치가 되고, 그 웃음은 '좋아요'를 타고 빠르게 소비됩니다.

그러나 가난은 유머의 소재가 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물가가 오를수록 식사의 선택지는 줄어들고,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운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워진 현실에서, 이 농담은 결코 가볍게 닿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지나가는 콘셉트가 아니라, 매일의 생존과 존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밈은 '자조'라기보다, 타인의 결핍을 배경으로 삼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잔인한 연극처럼 보입니다.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의 실체

처음 그 게시물을 보았을 때 느꼈던 어색함은, 아마도 그 간극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SNS 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생각에 관심이 있어 몇몇 쓰레드 유저들을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밈을 접했을 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왜 그 장면이 마음에 걸렸는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가난을 말하는 감각’이 아니라, ‘가난을 소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고통을 농담으로 밀어내는 태도, 혹은 누군가의 치열한 현실을 유희의 도구로 삼는 무심함이 그 사진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

SNS에서 이런 밈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며, 일각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 세대를 향한 비난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결핍을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혹은 그 감각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밈에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의 감각이 완전히 무뎌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웃음이 누군가의 삶 위에 함부로 놓일 때, 그것을 멈춰 세우는 힘은 이런 작은 질문들에서 시작됩니다.

가난을 농담으로 말하는 대신, 우리는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할까요.

새해를 맞으며, 적어도 웃음 하나를 선택할 때만큼은 그 웃음이 누구의 삶 위에 놓이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르는 '좋아요'는 과연 누구의 현실을 밟고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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