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진 것들의 비용

독일의 재무장과 세대 갈등을 바라보며

by 아우리

며칠 전, 독일 청년들이 징병 반대 시위를 벌였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개중에는 “차라리 점령당하는 게 낫다”는 피켓도 보였습니다. 도발적인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쉽게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가 일상이 되었을 때

저는 30년을 군에서 보냈습니다. 직업군인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우리에게 위협은 가정이 아니라 실재하는 관리 대상이었고,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공기가 아니라 매분 매초 만들어내야 하는 결과물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수없이 대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군이나 안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오히려 조심스러웠습니다. 제가 겪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과장처럼 들릴 수 있고, 직업군인이라는 이력이 제 말에 불필요한 무게를 더할까 망설여졌기 때문입니다. 설명하려는 순간, 설득하려 드는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담장 밖의 시민들은 아무런 진동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평화는 곧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마치 햇살이나 바람처럼,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고요함은 누군가가 먼저 감당했던 위험과 헌신 위에 놓여 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대가를 쉽게 말하고, 쉽게 잊습니다. 그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대가는 기억에서 밀려나고 '평화'만이 당연한 전제로 남았을 뿐입니다.


법으로 다가온 청구서

2026년 새해와 함께 독일에서는 새로운 병역법이 시행되었습니다. 형식은 자원입대라지만, 유사시 징병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가 명문화되었습니다. 사실상 징병제의 단계적 부활입니다. 기성세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안보 위기를 말하며 재무장을 서두릅니다.

그러나 법안 통과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셈법은 다릅니다. 국가의 안보보다도 당장 내 삶의 붕괴가 더 급박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논의가 아니라, 이미 일정이 정해진 제도 앞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시간과 계획이 먼저 흔들립니다.


서로 다른 계산서, 설명되지 않은 책임

이 반발을 '안보 불감증'이라는 말로 묶기에는 그 배경이 너무 복합적입니다. 이미 감당하기 벅찬 삶의 비용 위에 설명도 없이 날아든 추가 청구서에 대한 반응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치솟는 물가, 불안정한 고용,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금 부담. 이 모든 개인적 계산이 끝난 뒤에 국가의 의무가 놓이면, 그것은 숭고한 의미가 아니라 감수해야 할 손해로 다가옵니다.

군에 있었던 저는 지금 우리가 막아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어 통장에 찍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합니다.

독일의 국방장관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강한 군대를 추진합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거창한 명분이 개인의 삶으로 내려오는 순간 날카로운 질문이 따라옵니다.

“왜 지금인가. 그리고 왜 하필 나인가.”

이 질문은 개인의 이기심이라기보다, 설명되지 않았던 책임을 되묻는 말처럼 들립니다.

안보는 필요합니다. 결코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군복을 벗고 나온 뒤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설득되지 않은 안보는 결국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 흘려 지켰다”는 말이 숭고함을 잃고 꼰대의 잔소리나 도덕적 압박으로만 남는 순간, 그 말은 다음 세대에 닿지 않고 공중에서 흩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같은 위협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거리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 마음의 거리를 줄이지 않는 한, 우리가 말하는 ‘진짜 평화’는 끝내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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