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지우개

- 해우소(解憂所) ① 괜찮아지는 건 없다

by 차슈

이렇게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날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에도 잠은 오지 않고 더 퍼낼 감정조차 없는 우물의 밑바닥에서 말라붙은 흙만 발로 비비적대고 있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들뜬 것도 아니다. 원체 감정 표현에 박한 편이었기에 주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지만 나에게 그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니 괜스레 심각해졌다.


계기는 대충 짐작이 간다. 어제 직장에서 겪었던 사람들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기엔 내가 예상보다 유약했기 때문일 거다. 초임 때 같이 즐겁게 일을 하던 도중에 나이 지긋하신 사수가 얼굴색을 바꾸며 진지하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OO아, 우린 결국 일로 만난 사이야."


그 뒤에는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들한테 잘해'라는 말이 덧붙기는 했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는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이어갈수록 동료는 '내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서 그저 '사무실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라고 생각되면서 저 말은 진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한발 뒤에서 뒷짐을 진 채 관찰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에이스라 부르며 암묵적인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물론 좋은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바닷물에 강물이 흘러온다고 싱거워지겠는가.


회사라는 내부공간에서 계급을 붙이며 역할놀이에 한창일 때 밖이라고 조용하지는 않았다. 응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상한 고객들은 술에 취해 했던 말을 반복하는 주정뱅이마냥 인신공격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조치결과에 따른 책임과 추가민원은 오롯이 직원 개인이 짊어지고 있었다. 어제의 경우도 지난 직장생활에서 수두룩하게 겪었던 일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어졌다. 걸음을 옮기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못 박혀 서서 한 사람의 명복을 빌어주는 온갖 저주의 말을 떠올리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인간혐오에 매몰되어 점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의미 없는 낙서들을 지우고 뭉툭해져버린 지우개처럼. 흑연과 함께 떨어져 나간 살점을 보며 마음이 꺾이고 있었다.


지우개라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한 번 각인되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언제 다 쓸 수 있을까 걱정하던 미술용 대용량 지우개가 이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겨우 잡히는 몽당 지우개가 되어있었다. 다른 직장이라고 다를 것 같냐, 다들 버티고 산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다. 인터넷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하며 자신들도 버틸 힘을 얻는 듯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희망이라기보다 최면에 가까웠지만. 최면이 깨지자 '괜찮아지는 건 없다'는 잔인한 현실이 있었다. 그저 버티는 거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써 본다. 글은 참 좋다. 두서없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질서 정연하게 언어화되면서 활력이 생긴다. 그 에너지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성적인 느낌이라 감정에 따라 깎이고 소모되는 성질이 아니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 시간 좀 넘게 주절댔더니 조금 개운해졌다. 삶의 의지 바닥 상태에서 지금은 그래도 시원하게 욕 한 번 하고 날려버릴 힘은 생긴 것 같다. 감정표현도 박하고 남에게 생각을 늘어놓는 것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건넨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은 모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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