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인유

비가 온다.

그 비가 지나가면 한 계절이 지난다.


비가 오고 한 시절이 지나간다.

비가 오고 한 인생이 지나간다.

나는 그 사이에서 우산을 편다.


어떤 날에는 비를 피하려고,

어떤 날에는 조금 더 오래 듣고 싶어서.


비는 늘 무엇인가를 데리고 온다.

지나간 시간의 냄새를 데리고 오고

젖은 흙의 냄새를 데리고 오고

어떤 날에는 오래전 지나간 인연의 체취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때의 시간들.

그때의 사람들.

그때 스쳐 지나간 인연들.


한때는 분명 내 곁을 지나갔지만

지금은 계절 너머로 멀어져 버린 것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향기를 머금은 비가

오늘도 조용히 내린다.


계절의 틈 사이에 숨어 있던 비는

어느 날에는 나를 넘치게 하고

어느 날에는 여우비처럼 가만히 나를 적신다.


나는 그 비 속에서

가끔 우산을 접고 잠시 서 있기도 한다.

지나간 인연을 잠시 떠올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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