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 격투기
어젯밤 나의 세 치 혀는 격투기를 벌렸다.
후배가 나에 대해 아니, 나의 지인에게 왜 나의 업무를 도와줬는가,
따지듯 물어왔다는 그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나에게 직접 말한 적도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입을 닫으라,
더는 걱정하지 마라, 몇 번 농담반 진심을 전한 적 있었다.
후배와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몇 분의 선생님들은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별 할 말도 없고 또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니
모여 같이 성토하고 짓 까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맡은 일 충실히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 좌우명이라 밥 먹고 차 마시고 헤어지는 교류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리고 꼭 모임을 가야 하는 단체도 아니고
그때마다 다른 약속이 있었고, 구구절절 변명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을 잘 모르는 게 가지 않는 이유다.
나의 일상의 편안함이 업무를 도움받아 쉽게 하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된 일이며
배 아플 일인가, 능력껏 살면 되는데 능력 부족한 사람이 일 잘하는 척하려
모든 업무를 도맡아버렸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 이해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없던 일을 나서서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을 오지랖 앞세워
본인만 피곤하게 된 것을 왜 남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
웬만하면 세 치 혀 놀리지 않으려 한다.
쓸데없는 남의 말도 시간 만들어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내 곁에 오면 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그렇다고 내 방으로 오는 여러 발 빠른 소문에 관심 없지만,
파수꾼처럼 날아드는 아침 신문을 아예 접을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사람이니 적당한 선에서 늘 타협하려 한다.
시간 나면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한다.
스스로 계발에 힘쓰며 살고자 하나 바람은 자꾸 가지를 흔들고
가끔 뿌리를 뽑으려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도 세 치 혀를 도끼 같이 놀려 일순간 모든 것을 잠재우려 하지만
돌아서면 후회가 밀려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침에 긴 문자가 왔다.
후배는 자신의 오지랖 앞에 무릎 꿇었지만 나는 나의 세 치 혀에 또 무릎 꿇고 반성한다.
어젯밤 내렸던 폭우는 냇가의 지저분한 쓰레기를 다 몰고 어디로 흘러갔다.
나쁜 말과 남의 탓하는 이 마음도 같이 보내려 출근길 냇가 흙탕물을 바라본다.
이 흙탕물도 퇴근 무렵이면 가라앉아 말간 하늘처럼 깨끗해져 있을 것이다.
그러할 것이라 말 많은 매미는 꼭 그 후배처럼 나무 위에서 악 쓰며 전해준다.
야, 매미!
너도 조심해 세 치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