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ㅡ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문장이다.
여기서 나빌레라는 '나비'와ㅡㄹ레라'를 합쳐 나비 같다는 뜻이다.
폭우 쏟아지는 이 시간, 강연을 위해 먼 길 가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넣는다.
옷 다 젖지 않았는지?
잘 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데 입고 간 옷이 뭐길래 옷 상태를 물은 것이다.
오늘 강연을 위해 풀 먹인 모시를 빳빳하게 다려서 입혀 보냈던 것,
여름이면 아른하게 비치는 그 맛과 몸에 붙지 않아 걸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아,
무엇보다 엄마를 닮아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더위만큼 모시 손질에 나는 바쁘다.
요즘 좋은 소재가 많은데 하필 어려운 힘든 이 짓을 왜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보고 자란 환경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다.
여름이면 엄마는 늘 다리미와 씨름을 하셨다.
그 곁에서 신문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내 짧은 삶에서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때를 꼽으라 하면 단연 이 순간이다.
무릎 꿇고 앉아 한 시간도 좋고 풀 먹인 적당히 젖은 모시를 다리미로 다리다 보면
열 길 사람 속은 몰라도 아른거리는 모시 속을 볼 수 있다.
빳빳한 대감 같은 성미의 기상이 흘러야 엄마의 손에서 다리미는 뜨거운 마음을 식힐 수 있었다.
여름 내내 못 박은 벽에는 엄마의 손길이 춤을 춘다.
뒷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시의 가벼움, 참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남아서
엄마처럼 남편의 모시를 다리며 여름을 맞고 보낸다.
모시는 뜨거운 태양아래 더 빛난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은 비 맞은 강아지 귀가 되어 축 처져 버리면 멋도 맛도 나지 않아서
비 맞았는지 옷의 안부를 먼저 물어본 것이다.
다행히 비 맞지 않아 옷은 그대 품성을 닮아 당당하다 말하는 남편 농담에 안도를 한다.
굳이 번거로운 이 일을 여름마다 해야만 나의 여름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멋을 지키는 일도 있겠지만 그 옷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엄마의 정성을 생각한다.
아름다웠던 그 풍경,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시고 엄마는 뜨거운 다리미와 함께 했던 젊은 날의 하루가 나에게 다가와
나빌레라, 나빌레라,
나비와 같이 사푼사푼 여름은 갈 것이고 고이 접은 사랑은 온 마음에 스며들리라는 것을
귓속으로 바람 한 점으로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