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에 쌈 싸 먹다
봉숭아가 꽃을 피웠다.
그것도 발갛게 등불같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처음 두 송이 분양받았으나 한 송이는 죽고 한 송이만 겨우 남았었다.
올해는 여러 송이가 창고 뒤에서 뾰족하며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내심 반가워
환호를 질렀는데 풀인 줄 알고 모조리 뽑아 깨끗해진 뒤안길 사진으로 보여주며
열심히 일한 당신을 칭찬해 달라는 순간, 올해는 봉숭아 물들이는 호사는 없겠구나,
단념하며 지냈는데 퇴근길, 문득 눈에 들어온 불빛 같은 꽃.
탯줄같이 질긴 생명이 보란 듯 다시 꽃 피운 것이다.
봉숭아 꽃물 들이는 시간은 바야흐로 여름의 성수기.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은 입맛마저 달아나게 한다.
예전처럼 아궁이 불 지펴 밥 해 먹는 수고로움은 없지만 그래도 삼시 세 끼는
주부로서 엄마로서 힘든 날들이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 밥상은 매우 단조롭다.
양파 조금, 풋고추 송송 짭조름하게 끓이고 텃밭의 호박잎 뚝뚝 따서
김 한소끔 올리면 저녁 밥상 완성.
여기다 호사로운 날은 텃밭 오이나 가지나 참기름 한 방울 둘러 무치거나 볶거나
싱싱한 풋고추 마늘 툭툭 찧어 넣은 쌈장이면 황제 밥상이 된다.
호박잎에 밥 한 술, 된장 한 숟가락 요모조모 접어 입에 넣으면
담백하면서도 간단해서 쌈 서너 번 싸면 한 끼 또 뚝딱 넘어간다.
이 모든 것은 엄마의 밥상에서 먹고 배우며 자란 덕이다.
넓은 마당 평상에 앉아 소박한 밥상을 받으면 참 아름다웠다.
선선한 저녁 바람 불고 달빛 좋으면 이 세상 빛나는 일 또 있을까 싶었던 지난날,
나는 엄마 밥상 그대로 오늘 아침 식탁에서 호박잎쌈을 먹는다.
내리는 비 음악 삼아 앞산 눈 시린 나무들은 배경 삼아
이런 호사스러운 쉰아홉 번째 여름이 있을까.
매콤한 된장에 호박잎 서너 번 싸 먹고 주먹다짐 같은 일상으로
복잡한 하루 벌이를 나가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빗물은 호박잎에 고이지 않으니까.
스스로 마르거나 떨어져 땅으로 스며드니
슬픔이나 고통이나 외로움은
언제나 머물지 않고 빗물처럼 당신도 모르는 사이 흘러갈 테니.
*칠월 칠석
여름 살림이란 간단해서
빡빡한 강된장에 호박잎 싸서
짭조름하니 고등어 살점 한 점
톡 발라 얹으면 족한
더 그리울 사람 없는 날
*[괜찮습니다] 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