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

굳은살

by 들국화

엄지발가락 사이, 살인 것 같기도 한, 살 아닌 듯 딱딱한 모서리가 생겼다.

걸음 걸을 때마다 아린다.

목욕탕에서 몇 차례 살살 달래 떼어내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아프기는 처음이다.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굳은살 박일 정도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산 증거물이기도 하니.

누구에게 당당히 최선으로 살았노라, 말할 수 있을 빌미가 생긴 것 같아

아프면서도 기쁜 이 마음 무엇일까.

숟가락, 젓가락 두 벌, 이불 한 채, 그리고 무덤 같은 책들을 안고 신혼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뒤꼍으로 나가 손수 덧문을 올려 막대기를 세워야 바람 드는

삼만 오천 원 단칸방에서 살았다.

습해서 여름이면 지네가 방까지 출몰하는 그런 곳, 연탄 세 장을 한꺼번에 갈아야 하는,

불편한 그 방에서 아들을 낳았고 우리는 미래를 꿈꾸었다.

미래에 와닿은 지 서른 두 해.

방 두 개, 거실, 화장실 두 개 딸린 단독으로 집을 지어 이사했다.

꽃밭이 있고 문 열면 텃밭이 있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한다.

남들 눈에는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는 우리지만

아직도 달리고 달리는 멈추지 못하는 고장 난 자동차에 얹혀

출퇴근과 업무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마음에는 확연한 차이가 생겼다.

조급함이 없어지고 더 누리고 싶은 간절함이 없다.

식탁에 앉아 앞산 푸른 나무들을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고

요즘처럼 비 오는 날이 길어지면

꽃밭에 나가 늦여름 분홍 장미나 복숭아꽃 따다 손톱에 꽃물 들이는 시간이 있어 좋다.

멀리 있는 것을 쫓지 않고 가까이 있는 낮은 것들에게서 나를 보고 너를 생각할 수 있어 좋다.

폭우가 쏟아지는 지금, 내 방에는 커피와 음악과 책과 기타가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같이 놀 수 있으니 무엇 더 바랄 게 있을까.

이처럼 틈새를 잘 활용하는 방법도 오래 살아온 나만의 비법 아닐까 싶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내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다.

어제 퇴근 후 아들이 가져 잘 반찬 두어 개 만드느라 부엌에서 다섯 시간 서성거렸더니

새벽, 다리에 쥐 나서 왕 파스를 붙이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와 굳어버린 사랑 슬픔 고통 이별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싫지 않다.

떼버려야 할 못난 살이지만 이것마저 나니까, 온전히 내가 만든 내 것이니까,

품으며 살아야겠지.

굳은살 박인 걸음으로 씩씩하게 출근했다.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야겠지.

누군가 간절히 바랐던 하루이지 않을까.

모르는 이 세상 그 누구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굳은살



굳어버린 것은 엄지발가락뿐만이 아니다.

이별도 미움도 사소함으로 굳어질 나이

내 것이나 버려야 할 것은 마음뿐이 아니다.

굳은 맹세 굳은 약속

다 버려야 굳세게 남은 삶 살 수 있으리


굳어버린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눈빛마저 굳어졌다.

처음 본 그 순간 굳어져

지금껏 완강히 더 굳어져 버린

내 살이나 네 살 같은 굳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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