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꽃이 피었다

참깨꽃이 피었다

by 들국화

초를 다투는 출근길에 눈에 들어온 하얀 종 닮은 참깨꽃

그래, 참깨꽃 호박꽃 피는 칠월도 후반을 달려가고 있구나.

조롱조롱 매달린 참깨밭에는 흰머리 수건을 두른 엄마가 없다.

깨꽃이 저리 피어도 더는 깨밭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시절,

깨꽃은 피고 엄마는 요양원 침대에 누워 하루가 가는지 오는지 모른 체

시간을 갉아먹고 계신다.


어젯밤은 일 년 치 인사를 조상들께 드리는 날이었다.

제사를 모셨다는 말이다.

본의 아니게 태어나니 금수저였다는 말이 있듯 시집을 가니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어버리는

피할 수 없는 역할을 줬다.

장남은 아니었지만 집안 사정상 장남으로 다시 태어난 남편 덕분에 매달 의식처럼 지내는

제사에 참여를 많이 했지만 그땐 시어머니의 들러리였을 뿐이어서 보이는 것만 하면 되는

그야말로 나일론 맏며느리였다.

어려운 줄 모르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차지한 종갓집 제사, 즐겁게 한 판 놀아보자는 식으로

가족들과 함께 간단하게 소박하게 지내며 매년 달을 넘기며 살았다.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해 사돈 밥까지 알뜰히 챙겨주신 부모님 덕에 그나마 수월했지만

온전히 맏이 역할을 한 지도 삼십 년이 훌쩍 흘렀다.


재정비에 들어가 아들에게 며느리에게 이 놀이를 조금만 덜어주려 2년 전부터 더 간소화하게 되어

명절 제사는 없애고 1년에 한 번 모든 조상님들을 한 자리에 결정한 날이

바로 어제 음력 6월 2일.

남편에게 엄마가 낳은 엄마 기른 엄마 두 분이어서 내 생각으로 낳은 엄마보단 길러준 엄마가

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 모든 조상님들께 여쭈어서 이 날을 기준으로 삼았다.


삼탕과 생선 한 손 나물 세 가지, 여름이라 과일이 좋아 이것저것 그리고 올해는 직접 키운 수박과 토마토를 올릴 수 있어 마음이 좋았다.

부부 둘이 주거니 받거니 잔을 올리고 주문을 드리고 절을 아주 많이 했다.

마지막 한 잔은 젊은 나이에 가신 시숙께 올렸다.

재혼해서 살다 가셨지만 그쪽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밥 한 그릇 뜨지 못한다는 말씀을 형님에게 들었던 터라

정성 다해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렸더니 남편이 운다.

미덥지 못한 형제간이었는지 서로 데면데면 살았던 세월을 후회하기도 그립기도 한 하나밖에 없는 큰 형이기에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축제가 끝나고 정말 오랜만에 늦은 제삿밥을 둘이 앉아 먹는다.

고마워! 처음으로 들은 남편의 진심, 눈 두 덩이가 붉게 꽃피어 있었다.

그래, 그래, 이렇게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지.

잊고 살았네, 그대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대신 장 봐주고 뒤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한여름밤의 축제.

덕분에 잘 마치고 출근하는 길, 열심히 조상을 모셨던 시어머니 아버지는 모두 참깨꽃으로 피고

산비탈 호박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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