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4박 5일 제주도 연수를 간 남자는 날마다 매 시간마다 사진을 투척하고 문자를 남발한다.
평소 60대 부부처럼 손만 잡는 사이, 아니 손도 잡지 않는 사이인데 왜 밖으로 나가면
그리도 집을 그리워할까?
여행은 떠남으로써 떠나기 전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진심을 지녔을까.
저녁에 영상 통화가 떴다.
32년 동안 한 번도 영상으로 통한 적 없었는데 왠 일.
받자마자 다짜고짜 고양이 하라를 보여달라 한다.
내일이 집으로 오는 날인데 도무지 보고 싶어 견디지 못해 영상을 걸었단다.
이 남자, 이 남편을 어찌할꼬?
고양이보다 못한 존재 나는 아내는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하라는 영상이 어색한지 자꾸 자리를 피하고 나와 남자는 영상으로 서로를 잠시
보았을 뿐 별다른 대화를 하진 않았다.
우스개 소리로 다음 생엔 남자의 고양이로 태어날 거라 말한 것이 그대로 맞을 줄이야.
아내가 보고 싶은 것이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약간 썰렁한 가을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로운 아침은 또 와서 바람을 일으키고 햇살을 뿌려준다.
아마 오늘도 멋진 나의 하루가 되지 않을까, 그 남자의 관심과 달리 나는 나에게 시에게
바람에게 구름에게 마음 주고 위로받으며 살 테니.
서른두 번째 결혼기념일도 며칠 있으면 어김없이 다가오지만 둘 다 날짜조차 잊어버린 채
보낼 것이다.
이런 게 뭔 큰일이 되겠나, 우리는 아직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존재하니 이것만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 않으랴.
4시 비행기로 온다니 무사히 건강하게 집으로 복귀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진양호와 촉석루
지인 아들 결혼식 갔다가
오래전 신혼여행지를 찾았다.
아내는 촉석루를 생각했고
남편은 진양호를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에
저런 답이 오고 저런 이야기에
이런 대답을 하는 사이
둘은 다른 곳을 보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셈
며칠 있으면 서른두 번째
결혼기념일
그날도 다른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것 역시 꽃의 한 종류
웃음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