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명은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보좌진이 정리한 정책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정민은 한참을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보님, 간단히 공유드릴 게 있습니다. 상대 캠프 쪽에서 골목상권의 구원자로 이름을 날린 백종훈 씨와 접촉 중이라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돌고 있습니다.”
이창명이 손을 멈췄다. 화면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정확한 얘긴가?”
“아직 실무선에서 논의되는 정도지만, 꽤 구체적인 접근입니다. 직접 영입보다는 유세 지원이나 자문위원회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고요.”
이창명은 의자에 기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민은 덧붙였다.
“그분은 개인 브랜드 영향력이 상당하고, 대중 이미지도 안정적입니다. 프랜차이즈 대표이기도 하지만, 방송·교육·창업 분야에서 활동이 많다 보니 ‘시장주의자’ 이미지보다 ‘현장 조언자’ 같은 인식이 강하죠.”
“자영업자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특히 경기 침체 국면에서 민생 키워드를 선점당하면, 우리 쪽 공약이 상대적으로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창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눈빛은 예리했다.
“여론 반응은 어떤가?”
“아직 공개적으로 움직인 건 아니지만, 만약 등장하면 화제성이 큰 인물이라 언론도 적극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민은 살짝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다만, 백종훈 대표가 이끄는 더본F&B가 상장 당시 공모가 산정 논란, 상장 후 주가 하락, 프랜차이즈 구조에 대한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었습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 부분 역시 충분히 이슈화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창명은 책상에 손을 얹고 말했다.
“공세를 하겠다는 건가?”
정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리스크를 사전에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인물을 내세우는 쪽이라면, 그 인물에 대한 시장 반응과 검증 포인트도 함께 감안해야 하니까요.”
이창명 사무실에서 나온 후 유정민은 엘리베이터가 닫히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연락처 목록에서 ‘최 국장 - D일보’를 찾아 눌렀다. 상대는 신호음 한 번에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정민 씨? 오랜만이네? 저녁 시간도 넘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국장님, 이메일로 자료 하나 보냈습니다. 더본F&B 백종훈 대표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정리된 자료인데요.”
최 국장이 숨을 멈췄다.
“백 대표를 왜?”
“이메일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최 국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서재에 들어와 노트북을 열었다. 그는 메일함을 열고 새로 도착한 메일을 클릭했다. 제목은 단순했다. “더본F&B 백종훈 대표 관련 이슈 정리” 문서를 열자 첫 페이지 상단에 더본F&B의 위법 행위 항목이 정리돼 있었다.
○원산지표시법 위반 : 낙지볶음, 새우덮죽 등
○식품위생법 위반 : 농약통으로 사과주스 살포, 공사 자재용 BBQ 장비 운용 등
○가맹사업법 : 연우볼카츠 매출 허위 과장
이 밖에 건축법, 농지법, 주류면허법, 축산물위생관리법 등 위반 사항이 포함돼 있었다.
최 국장은 무의식중에 안경을 한 번 고쳐 썼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익숙한 문장 스타일과 팩트 배열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체계적인데, 이창명 캠프랑 적이 된 건가….’
그는 페이지를 넘기며 사과주스를 담은 농약통 사진을 봤다. 지역 축제에서 사과주스를 뿌리고 있는 근로자에게 백 대표가 칭찬을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어지는 쪽엔, 식약처 위생 행정처분 내역이 정리돼 있었고, 연우볼카츠 가맹 점주들과의 갈등 관련 기사 링크들도 첨부돼 있었다.
최 국장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당직 중인 데스크 담당 부장에게 메신저를 띄웠다.
“이거 내일 아침 단독으로 처리하자.”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 승객들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 화면 위로 같은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단독: “위생 지적하던 골목식당 MC, 자사 브랜드는 어땠나?”- D일보
바로 아래엔 자극적인 서브 타이틀이 이어졌다.
“식약처 행정처분 다수… 농약통에 담긴 사과주스 살포, 연우볼카츠 본사-가맹점 갈등 논란까지”
기사에는 축제 현장에서 농약통에 사과주스를 담아 음식에 뿌리는 장면을 정면으로 포착했다. 그 옆에서 백 대표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캡션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장 위생 강조하던 골목식당과는 딴판”
그 한 장의 사진이 불을 붙였다. 기사는 SNS에 빠르게 퍼졌고, 트위터와 커뮤니티에는 댓글이 쏟아졌다.
“진짜였네.”
“이중잣대 실화냐.”
“미디어를 등에 올라탄 장사꾼.”
정오가 되기도 전에 유튜브에는 백 대표를 저격하는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충격 단독: 백종훈 브랜드 위생 실태, 알고 먹었습니까?”
“팩트 체크: 백종훈, 브라질 닭이 국산 닭으로?”
“전통시장 사유화: 백종훈의 진짜 속내는?”
“비즈니스의 기술: 연우볼카츠 본사 vs 점주들 갈등 재조명”
썸네일에는 익숙한 얼굴 위에 노란 글씨로 ‘위생? 국산? 다 쇼였던 걸까?’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조회 수가 10만 건을 넘어가고 있었고, 댓글 창에는 팬이었던 이들조차도 “실망입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정민은 그날 아침, 노트북을 열자마자 이 상황을 한눈에 파악했다.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
정민은 모니터에 뜬 댓글 창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여 브라우저를 닫았다. 책상 옆에 세워둔 스마트폰엔 이미 여러 개의 메시지 알림이 쌓여 있었다. 언론, 커뮤니티, 그리고 캠프 관계자들까지─ 모두 같은 키워드로 반응하고 있었다.
정민은 최근 상장한 백 대표의 더본F&B로 이번 이슈를 확장하고자 했다. 문뜩 도진이 그동안 반복해서 이야기해왔던 문제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과잉 포장된 공모가, 반복되는 상장 후 급락,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소비자 인기와 브랜드 이미지에 기대어 평가받는 비정상적인 밸류에이션. 공모가 논란이 있을 때마다 주관사는 빠지고, 피해는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구조.
그는 메신저를 켜 도진에게 연락했다.
“도진아, 네가 전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국내 IPO 시장의 구조적 문제, 상장 직후 무너지는 주가,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 메커니즘 말이야.”
도진은 ‘읽음’ 표시만 남기고 잠시 답이 없었다.
정민은 이어서 타이핑 했다.
“이번에 백종훈 대표의 더본F&B가 그 이슈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 적합한 케이스인 것 같아. 사람들 관심도 지금 최고조고, 소비자 신뢰라는 마지막 장치도 흔들리고 있어. 그냥 네가 보던 방향 그대로 정리해보는 게 어떨까.”
조금 있다가 도진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그래, 조사해볼게.”
도진은 메신저를 끝내고 곧장 전자공시 시스템에 접속했다. 더본F&B의 상장 직전 공시된 투자설명서를 열었다. 사업 개요, 연결 기준 매출, 영업이익률, 가맹점 수 추이. 수치는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속엔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 있었다.
성장은 저가 커피 브랜드 매장에 집중되어 있었고, 프랜차이즈 업계 특성을 무시한 기업가치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가맹점의 성공 사례를 부풀리고, 외식업계 대표 인물이라는 인지도를 밀어붙여 상장을 추진했다.
도진은 과거 프랜차이즈 상장 사례들을 종합했다. 태창파로스, MP그룹, 해마로푸드서비스, 디딤 등. 처음에는 모두 ‘외식 프랜차이즈의 대표 주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지만, 상장 후 매출 정체와 본사-가맹점 간 갈등, 오너 리스크 등이 불거지며 결국 상장폐지되거나 거래정지되어 있는 상태다.
도진은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보고서 초안 제목: “더본F&B IPO, 주관사는 웃고 개인투자자들은 울고”
1. 보고서 발간 이유
2024년 11월, 더본F&B가 코스피에 상장했다.
백종훈 대표라는 ‘브랜드 신뢰’가 공모가 산정의 핵심 논리였고, 투자자 다수는 그 이름 석 자를 믿고 청약에 참여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 대비 90% 급등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고점 대비 60% 가량 급락했으며, 공모가 대비 25% 하락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역시 상장 첫날 매수는 필패”라는 냉소가 다시 퍼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단순한 ‘브랜드 리스크’나 ‘일시적 악재’가 아닌, 한국 IPO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더본F&B라는 사례를 통해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2. 공모가 산정 - 고평가를 조장하는 기관들
더본F&B의 공모가는 34,000원이었다. 밴드 상단인 28,000원을 훌쩍 넘겼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의 과열 경쟁 때문이었다. 상장 당시 공모가 산정에 적용된 PER은 15.78배였지만, 공모경쟁 과열 속에 프리미엄을 붙여 34,000원으로 책정됐다. 가맹점 수 정체와 프랜차이즈 산업의 구조적 성장 한계, 오너 리스크 등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다.
3. 반복되는 상장 후 급락 – 기관, 외국인은 보호예수 이후 떠나고 개인투자자만 장투
상장 당일, 더본F&B 주가는 64,500원까지 급등했지만, 5월 중순 현재 주가는 26,300원으로 고점 대비 59.2% 급락, 공모가 대비 22.7% 하락한 상황이다. 상장 후 단기간 급등 후 급락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구조적 문제다. 공모가는 시장 기대감에 의해 부풀려지고, 상장 직후 이익 실현은 기관과 주관사 몫이며, 하락의 부담은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 짊어진다.
4. 주관사의 책임 – 프랜차이즈 업종 리스크를 알고도 리스크 반영 전무
더본F&B는 총 공모금액 1,020억 원 중 4.8%에 해당하는 49억 원을 주관사 인수수수료로 지급했다. 이는 2024년 상장 기업 중에서 최고 수준의 수수료율이었다.
프랜차이즈 업종은 이미 상장 이후 잦은 경영 리스크와 회계 불투명성으로 악명 높았다. 과거 태창파로스, MP그룹, 해마로푸드서비스, 디딤 등은 모두 상장폐지나 거래정지라는 동일한 결말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사들은 이 위험요소를 평가 과정에서 사실상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장을 주관한다는 명목으로 높은 수수료율을 챙기는데 전념했다. 그들은 투자자 보호보다 수요예측 흥행과 공모가 부풀리기에만 몰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상장은 ‘리스크 관리’가 아닌 ‘흥행 기획’에 가까웠으며, 주관사는 책임 있는 평가자의 역할을 포기했다.
5. 더본F&B의 매출 구조 – 성장 정체와 브랜드 의존도
2025년 예상 매출은 전년 대비 -18.1%, 영업이익은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전체 매출의 86%가 가맹 수수료이며, 커피 체인점 매출 의존도는 37%를 상회한다. 프랜차이즈 업계 특성상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직접적인 가맹점 이탈로 이어지며, 현재 가맹점 수는 3,066개에서 연말까지 2,770개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스터피자, 연안식당 사례에서 보듯, 올 3분기부터 가맹점 감소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6. 결론 – 이번에도 교훈 없이 지나갈 것인가?
더본F&B 사태는 프랜차이즈 기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이는 ‘신뢰’로 포장된 구조적 취약성, 주관사의 책임 회피, 공모 시장의 과열, 그리고 투자자 보호의 부재라는 한국 자본시장의 단면을 집약한 사례다.
이 보고서는 ‘더본F&B’가 아니라, 이 시장에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실패한 IPO 구조를 조명하기 위해 작성됐다.
─RM리서치 최도진
다음 날 아침, 정민은 회의실 한쪽에 앉아 천천히 도진의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공모가 산정의 허구, 프랜차이즈 업종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오너 리스크 반영으로 인한 가맹점 감소. 도진은 오직 데이터와 구조로만 시장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 문단을 읽은 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보고서를 덮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더본F&B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방식 전체에 대한 고발이다.
정민은 곧바로 메신저를 통해 이창명 후보에게도 리포트를 전달했다.
“후보님, 해당 보고서는 단순한 외식 프랜차이즈 문제를 넘어 한국 IPO 시장의 왜곡 구조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곧 국정 비전 제시에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이라 판단되어 전달 드립니다.”
잠시 후, 이창명에게서 읽음 표시가 떴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 무렵, 정민의 휴대폰이 울렸다.
“─접니다. 보고서 잘 받았습니다. 이런 주식시장의 구조 문제…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됐군요. 정책으로 풀 수 있는 방향, 같이 고민해봅시다.”
정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따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도진에게서 전해진 이번 리포트는 단지 한 기업의 민낯을 드러낸 데 그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금융시장의 왜곡된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 상대 캠프에서 준비하던 ‘백종훈 대표 영입’에 대한 움직임이 자취를 감췄다. 정민은 그 조용한 변화가, 도진의 보고서가 가진 무게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라고 느꼈다.
《세력자들》 | 최성환 | 책들의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