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증권사 강남센터 1층 엽업부는 무겁고도 날 선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상환이 안 된다니요? 무슨 말입니까? ‘메가플러스’가 갑자기 회생신청을 해버리면 끝인가요?”
한 중년의 남성 고객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투자 계약서를 테이블에 내던지면 말했다. 그 옆엔 60대 중반의 여성 두 명이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M증권사 PB센터가 지난주 고액 자산가들에게 권유했던 ‘메가플러스’ 카드매출 기반 ABSTB(Asset Backed Short Term Bond) 상품, 즉 자산유동화 단기채권이 돌연 ‘상환 불능’ 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이 보도된 직후였다.
"전국 주요 상권에 100여 개 점포를 둔 국내 대표 유통기업 메가 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했습니다. 해당 자산에 기반한 금융 상품 역시 채무 구조 조정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데스크 직원은 매뉴얼대로 대응하고 있었지만, 고객들의 얼굴엔 공황이 서려 있었다.
“당신들, 메가플러스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카드매출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상품이라 안정적인거라고─.”
이른 아침부터 언론은 “메가플러스, 부동산 유동화 실패 후 기업회생 신청”,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실소유 구조 드러나나”, “M증권사, ABSTB 개인 판매 무리수”라는 제목으로 연일 특종을 쏟아내고 있었다. 특히, 검찰이 파인넥스트 파트너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속보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더욱 심상치 않았다.
같은 시각, 강남센터 지점장실. 지점장은 묵직한 책상 위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아래층 로비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불만,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속보 알림까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책상 한쪽에 놓인 투자제안서 위엔 메가플러스 ABSTB가 적힌 붉은 도장이 선명했다.
그는 잠시 망설인 끝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수신자 이름은 ‘이태훈 대표’ 신호음이 두세 번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받았다.
“이 대표님, 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메가플러스 건으로 연락드렸어요.”
지점장의 목소리엔 짧지만 눌린 분노가 배어 있었다.
“지금 고객들이 로비에 몰려와서 난리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흐른 후, 이태훈의 낮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저도 검찰 조사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사무실 압수수색도 있었고요.”
지점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저도 예상 못 한 일입니다. 메가플러스 자금 사정이 빠듯한 것은 알았지만, 회생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갑자기 내려버리면서 일이 급하게 꼬였나 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점장은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창밖에선 여전히 고객들의 항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대표… ” 예전 같았으면 ‘태훈아’라고 불렀겠지만, 지금은 그 호칭이 목구멍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지점장이 낮게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상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건, 딱 하나였어요. 이 대표가 나한테 괜찮다고 했으니까. 나는 그 말만 믿은 거지, 내가 뭘 더 판단하겠나.”
이태훈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 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회생신청은 정말 뜻밖이었어요. 회수 속도가 좀 느리긴 했지만, 메가플러스 정도면 버틸 거라고 봤습니다. 그 신용등급 하향, 그게 진짜 변수였어요. 일단 검찰 조사에서 잘 소명하고, 고객들 피해도 우선적으로 챙기겠습니다.”
이태훈의 말투엔 더 이상의 변명도, 여유도 없었다. 지점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신뢰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태훈은 사무실 한쪽, 블라인드를 내린 창가에 서 있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손이 약간 떨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저장된 이름 하나를 오래 바라봤다. ‘장민혁’
통화 버튼을 누르자 곧 신호음이 울렸다. 세 번째 신호에서 연결됐다.
“민혁아. 나야.”
“괜찮아? 뉴스 봤다. 지금 한참 시끄럽던데.”
이태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지 않다. 사무실 압수수색도 들어왔고, 검찰 조사 통보도 받았어. 젠장… 메가플러스가 회생 신청까지 할 줄은 나도 몰랐어. 이렇게 갑자기 무너질 줄이야…. 언론에서는 우리가 신용등급 강등되기 전에 유동화증권을 발행해서 자금 조달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말 몰랐어.”
이태훈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민혁아, 너 얼마 전에 이창명 후보 소개시켜줬잖아.”
장민혁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래, 뭐 부탁할 거 있어? 선거가 코앞이라 개인투자자들 엮인 일에 개입하는 건 좀 무리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이태훈은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어수선한 도심, 건물 사이를 비집고 흘러드는 햇빛이 사무실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도 알아. 지금 타이밍이 얼마나 민감한지. 개인투자자 피해 건이라 후보가 직접 엮이긴 어렵다는 것도. 근데 민혁아, 이건 그냥 ‘개인투자자 피해 사건’으로만 흘러가면, 너희 캠프도 타격이 있을 수 있어.”
“…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검찰이 문제 삼는 건 하나야. 우리가 신용등급 하향 전에 그걸 미리 알고, 그걸 숨긴 채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냐는 거야. 근데 이건 검찰 가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 나도 진짜 몰랐으니까. 회생까지 갈 줄은... 메가플러스 본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이태훈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하는 듯한 손짓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야.” 이태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지금 이 사태의 책임이 전부 우리, 즉 유동화 설계 쪽으로 몰리고 있어. 시장에서는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운용이 허술했다고 손가락질하고, 일부 언론은 ‘자산 유동화 자체가 위험하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고 있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장민혁은 말없이 숨을 내쉬었다. 이태훈은 말을 이었다.
“자산 유동화가 사기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그걸 기반으로 한 구조조정 정책은 설 자리를 잃어. 너희 캠프에서 준비 중인 공공·민간 리츠 통합 운영? 유통업 자산 리모델링 프로젝트? 이런 공약들도 다 같이 타격 받게 돼. 사람들이 물어보겠지. 메가플러스도 유동화하다가 망했는데, 이제 정부가 나서서 또 그런 걸 주도하겠다고?”
장민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태훈은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지금 필요한 건 프레임 전환이야.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려줘야 해. 민간 중심의 유동화 시장이 사각지대였다는 점, 운용 리스크 관리가 부재했다는 점. 그래서 공공이 개입된 새로운 형태의 리츠, 그러니까 ‘공공-민간 리츠 통합 모델’이 필요하다는 걸 역으로 강조해야 해.”
“… 네가 말하는 그 모델, 지금 우리가 검토 중인 거랑 닿아 있긴 하지.”
“그렇지. 정부가 유휴 상가나 공공 부지를 기초 자산으로 리츠에 투자하고, 민간은 자본과 운영을 맡는 구조. 공공은 투명성을 보장하고, 민간은 수익을 추구하면서 시장의 무책임한 유동화와는 선을 긋는 거야. 이 프레임으로 넘어가면, 메가플러스 사태는 오히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사례가 될 수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민혁은 책상 너머로 뭔가 메모를 하는 듯했다.
“직접적인 캠프 메시지는 어렵다. 하지만 언론에 캠프 정책자문단 이름으로 기고문 하나 띄우는 건 가능할 수 있어. ‘유동화의 공공성 확보 방안’ 정도 제목으로.”
이태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돼. 시장은 방향만 보여줘도 반응해. 그리고 검찰도, 그 방향을 눈치채면 이걸 함부로 몰아붙이진 못할 거야. 정치적 부담이 생기니까.”
장민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알았다. 이번 한 번이다, 태훈아. 이건 너 하나 살리자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하니까.”
이태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다음 수순이 그려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태훈은 여느 때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곧장 모니터를 켰다. 포털 메인에는 밤사이 올라온 정치 분야 기사 하나가 실시간 검색어와 함께 상단을 장식하고 있었다.
기고: “자산 유동화의 시대, 공공-민간 리츠를 통한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 이창명 캠프 정책자문단
기고문은 예상보다 훨씬 정제되어 있었다.
최근 유통업계의 자산 유동화 이슈는 단지 하나의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년간 누적된 민간 중심의 리츠·유동화 시장은 수익률 위주의 운용 관행과 구조적 리스크 관리 미비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산 유동화의 정책적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노후 상권이나 대형마트 자산처럼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자산에 대해서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공-민간 통합 리츠 모델이 필요하다.
공공이 기초 자산을 제공하고, 민간은 운용과 수익 구조를 맡되, 일정한 감독과 배당 규율이 적용되는 하이브리드 리츠 체계는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태훈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메가플러스 사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사에 실린 문장 하나하나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게 단지 내 잘못이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다.’ 그리고 ‘이걸 고치려면,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 이 메시지는 이미 시장에도, 검찰에도 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태훈은 단지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이 기고문이 왜 하필 지금 나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창명 캠프가 추진하는 공공 리츠 확대 전략은,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니었다. 그건 곧 ‘메가플러스 이후의 시장’을 설계하는 기회였고, 그 기회는 자신처럼 구조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에게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대통령만 바뀌면….’
이태훈은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입에 댔다. 메가플러스는 잿더미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잿더미 위에 새 구조물을 올릴 수 있다면─ 이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일지도 모른다.
유정민 역시 캠프 이름으로 내걸린 기고문을 확인했다.
‘이건 이태훈을 구하기 위한 글이다.’
직접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명확하게 느껴졌다. 정민은 천천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이마를 문질렀다. 이 글이 단순한 정책 방향 제시로 보기엔, 시점도, 문장도, 너무 정확했다. 시장 반응을 의식한 듯한 어조, 구조적 문제를 강조하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은 한 회사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는 그 프레임. 누가 이걸 승인했을까.
정민은 책상 위 메모지를 들춰, 캠프 내 정책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다시 훑었다. 자문단 단독으로 이런 메시지를 외부로 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캠프의 공식 입장을 은근히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불쑥 떠오른 이름. 장민혁.
불과 며칠 전, 그가 이태훈을 이창명 후보에게 따로 소개했던 자리. 당시엔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로 금융 분야 전문가라는 명목이었고, 별 의미 없이 넘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 소개 직후, 캠프 외곽에서 이태훈이 참여한 자산유동화 및 공공리츠 구조안이 검토 테이블에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정치자금 일부가 캠프 명의 후원계좌로 들어왔다는 것도─. 그땐 ‘후원’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너무도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정민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책상에 앉아 있자니 생각이 더 깊어졌다. 장민혁이 직접 기고문을 작성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그가 잡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흐름이 계속된다면, 이태훈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정책 프레임 속에 다시 안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정민은 이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장민혁. 그는 언제나 배후에서 움직였다. 공식적인 흔적은 남기지 않되, 결과는 항상 그를 향해 있었다.
정민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민의 눈빛은 이미 다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