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꽃구름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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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들리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좋다. 멜로디가 매일 조금씩 바뀌는 기분도 든다. 그날 내 기분에 잔잔하게 들리기도, 요란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것마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을 기대하게 한다.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한층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스피스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아침마다 모든 방을 돌며 인사하는 것도, 점심을 먹고 나면 이란성쌍둥이인 아윤이와 재혁이가 귀신같이 나를 찾아와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는 것도 이제 내겐 일상과 같았다.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행복이 별 게 아니라고 표정과 행동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 웃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듯이.


-근데 오늘따라 기욱이가 늦게 나오네?


그러게, 하고 민우의 말에 동감했다. 시간은 3시가 다 되어가는데 기욱이는 아직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 번 기욱이 방에 갔다 와 볼게.


나는 우리 세 명의 방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기욱이 방 앞에 서서 노크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차례 더 노크해도 응답이 없자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부드럽게 꺾이는 문고리를 그대로 밀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부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나는 다시 민우에게로 가서 기욱이가 방에 없다고 전했다. 그때 수간호사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냐 물으셨다. 기욱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도 알렸다.


-호스피스가 넓은 편이 아니니까 다 같이 확인해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호스피스의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여 기욱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약 한 시간가량의 숨바꼭질은 결국 찾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나는 문득 기욱이와 함께 있었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민우야. 항상 기욱이랑 같이 놀고 왔다고 말하던 할머니,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알아?


그 할머니는 기욱이를 좋아했다. 내가 말을 걸면 대답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기욱이 얘기를 할 때만큼은 신나게 얘기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쓸쓸해 보여서 좋다고 했다. 등이 넓어서 든든하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기욱이가 마치 곧 떠날 사람인 것처럼 굴기도 했다. 저렇게 멋진데 아쉽다는 둥의 얘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뒤뜰 정원에 계실 거야.


나는 뒷마당으로 향했다. 정말로 그곳에 할머니가 계셨다. 화사한 해바라기 니트 블랭킷을 걸친 구부정한 등을 향해 달렸다.


-할머니! 기욱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기욱이?


-할머니가 멋지다고 했던 청년이요!-아! 그 청년이 드디어 돌아갔나 보네.


나는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알 수 없어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돌아가서 다시 올 테니까.


수간호사님이 이 할머님에 대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가끔 영문을 모르겠는 말을 하시며 자주 생각에 젖곤 하신다고 들었다. 결정적으로 치매를 앓고 계신다고 하셨다. 난 할머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지금 기욱이가 이곳에 없다는 뜻이에요?


-지금은 있을 수 없겠지! 에잇!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개나리를 꺾어 나에게 던졌다. 나는 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다시 곱씹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근데 나중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돌아온다는 건 언제쯤 돌아온다는 걸까? 반나절 안에? 하루 안에? 무엇보다 어디로 돌아갔다는 거지?


그 순간 기욱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 것 아닐까.


-기욱이가 돌아갔대. 근데 어디로? 왜?


나는 숨이 차서 토해내듯이 민우에게 말했다. 민우는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나는 민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정문에 서 있는 환경미화원인 원식 삼촌이 우리를 발견했다.


-기욱이 안 보인다며! 이곳에도 없는데!


저 멀리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을까 봐 큰소리로 외치는 듯 보였다. 삼촌에게 다가선 민우가 말했다.


-삼촌,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이 어디예요?


확신이 선 목소리에 원식 삼촌은 더 묻지 않고 차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버스터미널까지는 적어도 1시간은 걸어가야 해. 날이 많이 풀렸다지만 시간을 단축하는 편이 좋겠지? 지름길로 가면 차로 20분이면 가.


삼촌 말대로 정말 20분이 조금 지났을까 작은 버스터미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원식 삼촌은 민우의 손에 현금을 쥐어주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와.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 문을 열었다.


-다녀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멀어져 가는 민우의 뒤를 쫓았다. 민우는 매표소로 직행했고, 5분 뒤에 출발하는 상주행 티켓 두 장을 받았다. 티켓을 받자마자 버스에 탔다.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했다. 한숨 돌리고 나서야 민우에게 물어볼 여유가 생겼다.


-기욱이가 간 곳을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할머니가 기욱이는 돌아갔다고 했지? 기욱이가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어. 기욱이 아버지가 있는 곳.


그러고 보니 기욱이의 아버지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더 물어보지 못했다. 민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결의를 다진 사람의 얼굴 같았다. 버스는 3시간을 열심히 달렸다. 나는 바퀴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민우에게 물었다.


-기욱이가 왜 우리에게 말도 하지 않고 간 걸까?


민우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화가 나겠지. 민우가 화를 낼 정도면 이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나중에 기욱이를 만나면 꼭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버스는 해가 질 무렵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민우를 따라 걸어가는데 나아가다 말고 민우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몇 초 뒤 안쪽에서 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민우를 한 번 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민우의 표정은 몸과 같이 굳어 있었고 그 눈동자에 비친 정면에서는 한 중년 남자가 깨진 초록색 유리병을 한 손에 들고 위협하고 있었다. 노을이 지면서 그림자가 드리워진 장면을 보고서 나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떠올리는 동시에 아버지와 비슷한 작자가 오른손에 든 그것으로 한 남자의 배를 찔렀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어린 시절 보았던 한 장면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어린 남자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을 유리병으로 찌르던 그 장면.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그저 엉엉 울며 보았던 그 장면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유리병 끝에 뚝뚝 떨어지는 것이 피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남자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찾던 그 사람이 아니길, 제발 그 아이의 피가 아니길.


그곳에 있는 사람은 기욱이었다. 복부에 부상을 입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핏자국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이 먼저 움직였다.


-기욱아!!


나는 기욱에게 달려갔다. 기욱이는 마치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내 뒤를 따라온 민우는 소주병으로 위협하는 남자를 제압했다. 그 남자는 아주 왜소했고 민우의 한 손으로 가볍게 제압되었다. 옆에서 놀라는 사람들과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들이 까마득해졌다. 숨만 겨우 색색 쉬는 것 같은 기욱이를 품에 안았다. 피가 더 새어나가지 않게 꽉 움켜쥐었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상처를 아무리 힘차게 지혈해도 기욱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흐르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기욱이가 눈을 뜬다면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는 아직 네가 눈을 뜰 거라고 믿으니까 내 믿음에 보답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기욱이를 꼭 안았다.


네가 왜 우리 곁을 떠나려고 했는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네가 잊고 있던 게 하나 있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워졌고, 서로 많이 닮아버렸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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