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아들 시점
순수하고 하얀 백지에 색을 칠한 것은 부모님이었다. 색이 칠해지기 전에는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울고 싸고 먹고 만의 반복이었고 그 행동은 도덕이라는 개념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런 도덕을 심어준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생각이라는 걸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그들은 내게 몇 가지 지침을 내렸다.
그 지침에 맞는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혼이 났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칭찬을 받았다.
내 백지에는 언제나 예쁜 그림만 그려질 줄 알았다. 부모님의 펜만이 백지에 닿을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라는 것이 생기면서 그림은 조금 어두워졌다. 탈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와 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지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잉크는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화이트를 썼다. 그러나 그것도 덮어씌울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때 나에게 어떤 생각하고 있있을까.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길에 나를 놓아주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 같았을까 싶다.
나는 올바른 길에 놓이는 것이 틀 안에 갇힌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해야 한다는 점이 그랬다.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중압감이 꽤 컸으니까.
기대치를 높이는 건 실망감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였다. 그래서 기대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들었다.
기준선이 낮아지고 마지노선 바로 위에 선을 그었을 때 부모님은 최악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게 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편해진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평범해지는 게 싫었는데 그것과 거리를 두다 보니 평범해지고 싶어졌다.
마지노선 아래에도 자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심연으로 깊게 끌고 들어간 나를 마주해야 하는 건 부모님이었다.
아버지는 속이 썩어갔으며 어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죄책감 따라서 나는 점점 심해졌고 부모님마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불효의 정석이었다. 남까지 힘들게 만들어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근데 그 당시에는 나만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이타적인 면모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질려할 때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은 건 부모님이었다. 절벽에 매달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끌어올리려 했다.
부모님의 그런 노력 때문에 어느새 마음은 점점 안정되어 갔다. 마지막까지 아니, 영원히 내게 머무른 부모는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였다.
예전이었다면 그런 손길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받은 사랑도 빚의 개념이었다.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그런 것처럼.
수많은 대화와 공감 때문에 그런 강박이 거의 사라졌다. 다시 태어난 백지처럼 머릿속을 비웠다.
그리고 그 백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다시 돌아오게끔 진실한 모습이지만 그것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지 않게 행동했다.
예쁜 그림은 사람을 부르고 진실한 그림은 마음을 불렀다. 부모님은 올바른 길을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올바르게 만들게 했다.
어머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아버지는 모서리 진내 마음을 둥글게 만들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천륜이라고도 하지만, 아닌 일도 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천륜은 천운과 다름없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시시콜콜한 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필수 불가결인 아가페적인 사랑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은 그래서 감사함에 글을 자주 쓰는 것 같다. 내가 불안했던 일도 행복했던 일도 부모님에게 보여준다.
부모님은 글을 읽고 여러 말들을 해주신다. 아버지는 무뚝뚝해서 큰 감정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표정 변화가 나타난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한다. 선을 긋고 울타리를 지어 나누는 영역이 아닌, 가끔은 곡선을 그리고 울타리에 입구를 달곤 한다.
그렇게 이어진 나눔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확정은 하지 못하지만, 그 이상향에 가까워진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