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자

전지적 아들 시점

by 집안의 불청객

“지금 어디니?”


“뭐 하고 있어?”


“언제 들어와?”


어머니라면 당연히 가질 관심이었다. 누가 자기 아들에게 무관심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받아들이기에 이것은 나이가 들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유년 때는 열심히 답장해야 했고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어머니를 거스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로지 진실한 대답만 했고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즉, 거짓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었다.


순수하다는 의미는 악도 선도 아니었다. 따를만한 대상이 있다면 그것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배운 게 전부였기에 그게 맞는 행동이었고 맞는 말이었다.


그때는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고 독립하고 싶지도 않은 그 시기가.


청소년기가 되면서 자아가 확립되었다. 이때의 애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독립되길 원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독립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불만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자아가 확립하자 부모보다 친구가 먼저였다. 왜냐하면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친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같이 등교하는 것도 하교하는 것도 그 후의 생활도 친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때의 난 부모님을 그저 ATM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간섭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이뤄달라는 불쾌한 욕망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부모님과 나는 잘 맞지 않았다. 사소하게 사진 찍는 것도 거부했으며 같이 무엇을 하기가 싫었다.


이유라고는 친구와 같이 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깊이 박힌 뿌리는 이동시킬 수 없었다.


어느새 탈선하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학교를 가지 않거나 담배를 피웠다.


그것은 나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였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더 중요했다.

등교하던 도중 반에 도착하는 순간 메시지가 와 있었고 하교하는 시간에 핸드폰의 전원을 켜면 또 하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짜증이 몰려왔다. 나에 관해 관심을 껐으면 좋겠다. 부모님을 걸림돌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진학 후 용돈이 올라갔다. 집안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이라는 개념을 알기에는 아직 책임 없는 쾌락을 누릴 나이였다.


달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사십만 원을 전부 썼다. 기숙사에 있으며 집에도 자주 가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여자 친구에게 할애했다.


어머니는 그때도 계속해서 전화와 문자를 반복했다. 나는 언제나 단답형으로만 말했다. 그 핸드폰 속에 넘어오는 담담한 목소리에 묻힌 슬픔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로.


대학교 과정을 이수했다. 하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그때 내게 크게 실망감을 표했다.


그 실망감이 와 닿는 것만 생각했다. 여태까지 부모님의 기다림은 배제했다.


그 후로 대학교에서 만난 육 년 된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내 모든 것을 주고 추악한 모습도 선한 모습도 전부 보여줬는데 그녀의 선택은 갑작스러웠다.


헤어지고 나서야 부모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거대해 보였던 두 분이 나보다 작아졌다.


아래에서 위만을 바라보다가 이제야 내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참으로 어색했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신적인 표현은 서툴렀고 물질적인 돈을 드릴 수도 없었다.


후회가 몰려왔다. 여자 친구에게 쓴 돈의 절반이라도 부모님에게 해드릴걸.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은 헤어지고 나서도 내 편을 들어주었다. 외면했던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헤어짐을 잊기 시작할 때 어머니의 메시지와 전화는 반갑게 느껴졌다.


나에 관한 맹목적인 사랑, 설령 내가 배신을 하더라도 뒤에서 칼을 꽂더라도 그것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이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박힌 비수를 이제 하나씩 제거해야 할 차례였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어야 했다.


꼭 효자나 소위 엄친아가 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웃으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다고 생각하면 불행의 틈을 없앨 수 있겠다.


나는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한가지 바뀐 점은 이제 사랑이라는 건 그들이 일방적으로 주는 기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