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아들 시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그 장면 중에는 불행, 행복, 슬픔, 기쁨 등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하나만 꼽을 장면 같은 건 없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장면이 더 남을지 모르기에 지금 꼽고 싶지는 않다.
이상하게도 친구와 함께한 시간도 많음에도 부모님과의 과거 추억들의 장면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친구와의 기억들은 일회성에 그치지만, 혈연이라는 줄로 묶여 있는 가족과의 기억들은 모두 희소했기에 그런 것 아닐까 싶다.
희소한 장면이라고 해서 다 기쁨만 누려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도 장면에 남았다.
그러한 장면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퇴색되어지지 않고 안쓰러움만 남게 되었다.
예전에 그렇게 커 보이던 부모님이 이제는 작아보인다. 이마에는 주름이 보이고 흰머리가 나며 늙어가신다.
과거에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없던 시절, 이기주의적 시선 그러한 시선들이 과거의 장면을 후회하게 만든다.
행복하게 웃으며 네 명인 가족이 찍었던 오래된 사진이 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추억이 없다.
최근까지는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시기에 찍은 장면에는 나이만 다를 뿐 서로 웃으며 마주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사진도 과거의 장면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는다는 게 서럽다.
부모님이 나이를 들어가실수록 삶을 살아가는게 아닌 정리한다는 표현을 쓰신다.
그 정리는 삶에 대한 미련일 수도, 인간관계 일수도 있지만,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알게 될 나이가 오면 어떤 장면이 추억들을 스쳐 지나갈까. 아니, 그것들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생은 장편의 영화다. 영화는 사진의 연속이고 그 연속은 장면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시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언제나 아들로 남고 싶다.
그 이유는 영원한 내 편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다. 추억의 장면을 지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
불행한 장면을 기억하는 것보다 장면 자체를 지우는 것이 더 힘들다.
깊은 뇌리에 박힌 장면은 억지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다. 무의식이라는 존재가 뿌리 깊게 박혀있으니까.
그러면 부모님과 했던 무의식이 무엇이 있을까, 일단 매우 어린 시절은 아닐 것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그러면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장면이 많이 남겠다. 학생 시절부터 성인인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이 모든 장면을 그들이 떠나면 어떻게 지울 수 있겠는가. 아버지도 아들이었을 때가 있었고 어머니도 딸이었을 때가 있었다.
외할머니를 제외한 조부모님은 다 돌아가셨다. 그들은 이런 장면을 어떻게 지웠을까.
아니, 지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마음속에 품고 간직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다. 매일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곧장 나를 안아줄 것 같은 기분을 좌절로 대입시킨다면 말이다.
희망 고문이지 않을까. 사후세계가 있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죽을 의지도 존재한다.
결혼할 생각도,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할 생각도 없으니까. 물론, 이 말을 들으면 그들의 마음도 찢어질 듯이 아플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는가. 물질적 독립이 정신적 독립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데.
독립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나도 고독한 장면이다. 폭설이 내리고 강풍이 불며 눈에 묻혀가는 과정이다.
마마보이, 파파보이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부모님이 내 머릿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같이 한 장면들보다 홀로 선 장면들을 상상해야 할 것 같다.
독립이라는 건 언젠가 해야 하고 맞이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장면을 지우자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장면을 남기려고 할 수도 있다.
내 시각이 내 청각이 그들을 지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을 꼭 지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머릿속에서 여운을 남기지 말고 마음속에 저장해야겠다. 기억하기보다 저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겠다.
그들과 함께한 장면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큼직한 것까지 무엇하나 관여하지 않은 게 없다.
이제부터 그들이 내게 써주는 장면이 아닌, 내가 그들에게 써주는 장면이 되야겠다.
언제나 철부지인 아들이 아닌 듬직한 아들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