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아들 시점
미원, 맛소금, 설탕, 후추, 굴소스 등 셀 수 없이 수많은 조미료가 있다.
어머니는 옛날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 조미료를 많이 넣지 않는다. 건강이 이유였다.
예전에는 나의 건강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던 대상이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자 머릿속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오십 대 중반의 나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한 기간 그 시간에 머무르게 된 것이 어머니였다.
나는 아직 이십 대 중반이고 사실 건강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아픈 곳이 있지만, 그냥 그렇다고 넘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르다.
요즘 들어 관절염과 당뇨, 고혈압 그리고 허리통증까지 무사한 곳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을 끊지 못한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때 아직도 내가 짐이라는 점이 불편하다.
나는 조미료를 여러 가지 넣어보고 별로면 다시 만들면 되는 나이다. 다채로운 맛도, 맛있는 맛도, 맛없는 맛도 경험할 수 있는 나이다.
근데 어머니 나이는 그렇지 않다. 무엇을 넣고 빼고 실험하기에는 늦어버린 것이다.
도전 없는, 목적 없는 그저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인 심정이면서도 무엇을 해야 가족들이 편안할까 하는 생각도 가진 어머니다.
도전과 목적이 없는 삶은 정말로 고되다. 조미료 없는 음식이 맹탕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흥미가 없어진다.
자극적으로 살아갈 시기가 지난 마음을 인생에 조미료를 점점 줄여야 할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인지 싶다.
그러다가도 문득 어머니에게 최고의 조미료가 하나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친구, 술, 담배, 일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에게 희생하면서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나는 세상의 전부였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아들이 어디서 남들과 비교당하지는 않을까,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부엌에 줄어가는 조미료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식품들이 보이면 슬퍼진다.
늙으셨구나, 이제는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더 짧을 수도 있는 그런 시기가 오셨구나.
키우던 강아지를 보낼 때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존재가 사라지면, 나는 맹탕이 될 것 같다. 아무 조미료도 없이 그저 뜨거운 물처럼 아니, 끓지도 않는 차가운 물처럼.
이 얘기는 어머니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도 한때는 자신의 꿈을 쫓아간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면 안 될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아버지라면 꿈과 희망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뱉은 적은 없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요리에서 강제로 조미료를 빼려고 했다.
아버지도 자신만의 인생이 존재할 텐데 그것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당시에는 나만 생각했고 나 위주로 가족이 굴러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판사의 나무망치가 잘못된 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각각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영위하고 있다. 화합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하지만, 불행은 아니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족의 유지를 위해 아직 힘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가족을 위해 조미료를 빼야 할 날이 오겠지. 가지 않을 것만 같던 부모님이라는 위치에서 자식을 바라볼 날이 오겠지.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말이 이제야 기억난다. 그 말은 불행이 더 기억에 남는 나와는 다르게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말이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야. 미안해.’
그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표현할 방법이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내면이 뭉클해졌다.
부모님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미료를 하나씩 빼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속해서 이것도 저것도 넣어보라고 조언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 부모님 말씀대로 여러 가지를 넣다 보면 실패작도 있지만 대부분이 성공적이다.
실패작은 부모님도 겪어보지 못한 조미료이기에 도전해 보라는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모이면 성공이 되고 그 조미료에 가장 큰 뒷받침은 어머니와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