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아들 시점
슬픈 말이면서도 기쁜 말이기도 한 단어다. 언제나 늘 곁에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부분은 죽음이고 천륜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혈연이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진 단어가 바로 언제나이다. 혈연의 죽음은 말로 이룰 수 없이 고통스럽다.
글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는 망상 속에 부모님을 대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망상을 깨부수고 나와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어쩌면, 부모님이 한 행동에 관해서 내가 좋지 않은 기억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못했다는 게 아닌, 내 머릿속의 기억 장치가 고장 나버린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분명 나를 위해서 실행에 옮긴 동작일 텐데 그때는 그걸 알지 못했다.
학교에 가라는 말도 아르바이트하라는 말도 사회에 나가라는 말도 다 핑계 같았다.
나는 내가 언제나 부모님 그늘에서 편히 쉴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런 그늘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잠깐의 반항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더 안락한 곳을 찾으려고 한 발버둥이었다. 제일 안락한 곳이 그곳인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내 곁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아마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나며 인생의 반쪽이 날아가는 경험을 토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에게도 교육한 것이다. 우린 언제나 곁에 있지 못하니까 너도 슬슬 자립해야 하지 않겠냐고.
다 핑계라고 느낀 적도 있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정말로 안 좋게 생각하면 낳았으니까 책임져야 한다고, 나를 낳은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한 게 아닌 그들의 행복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알게 되었다. 왜 내게 당근만 주지 않고 채찍질도 같이했는지.
당근만 주는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채찍만 있는 지옥도 없다. 보상과 고생이 엮인 사회만이 존재한다.
그 사회에 녹아들려면 처음에 이론 공부하듯이 기초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한번에 사회에 던져지면 포기에 다다른 인생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연습시켰다. 내가 다칠까 봐 걱정하며 아주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했다.
대중교통 이용법,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 남들과의 인간관계 등 미래에 자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신경 썼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굳이 해야 하는 이유도 몰랐다. 어차피 엄마하고 아빠는 나한테 붙어있을 거고 그러면 해주면 될 텐데 내가 굳이 해야 싶은지 생각했다.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졸업을 하자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하얀 머리가 나서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눈가의 주름이 생기고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썼다.
변하고 있었다. 같이 있어야 할 시간이 점점 다르게 흘렀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다른 공간, 시간에 존재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것에 실패했다. 사회라는 곳에 한 발짝 딛자마자 뒤로 물러섰다. 물러선 곳 뒤편에는 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쓴소리를 뱉기도 했지만, 다독여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신감을 올려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지금은 현재 진행 중이다. 다행히도 이제 언제나 그들이 내 곁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노력해 보려고 한다. 그들의 자랑거리가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조금은 멀어질 수도 있다.
그들은 그걸 겪어봤고 감내했다. 혼자 있어야 하는 법과 멀어져도 어쩔 수 없는 법이 그래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게 슬프다.
그들은 언제나 내 곁에 존재할 수 없다. 떠나갈 거고 그걸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근데 대비한다고 해서 완전히 막을 수 있을까. 진정으로 혼자 남겨질 때의 비참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확답하지 못하겠다. 예행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실전 한 번 보다 못한 것과 똑같다.
제일 느끼기 싫은 실전이고 그것은 단 한 번의 경험이기에 자연재해보다도 더 무섭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반대로 하자면, 그들이 곁에 있는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
떠날 그대들을 위하여 혼자 남겨질 나를 위하여 오늘도 한 발짝 앞으로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