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장 과장님과 공장을 둘러보면서 현장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공장 라인에서 작업자가 제품의 오류를 눈으로 일일이 체크하는 작업이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특정한 수치를 만족했야 했는데, 이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는지 항상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체크하다보니 비정상 범위인데도 실수로 놓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정상 범위인데도 비정상으로 체크하는 오류가 많다고 했다.
나는 이 문제를 IT시스템으로 해결하려고 마음먹었다. 공장 과장님께서도 이런 문제점이 개선되면 아주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공장 현장을 모두 둘러본 다음 다시 4시간이 걸려서 본사에 도착하니 거의 밤이었다. 그래도 해결하면 좋을 것 같은 문제를 발견해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해서 나는 우선 공장에서 겪는 현장 문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자료를 만들었다. 현장에서 작업을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하는지, 그 프로세스 중에서 문제점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현장 작업자의 인터뷰도 첨부했다. PPT를 활용해서 문서를 작업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팀 폴더에 있는 자료를 다운받아서 양식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랬더니 대학생 티가 팍팍 나던 문서가 조금은 서툰 회사원이 작성한 것처럼 보였다.
보고서에 문제점 정리한 이후에는, IT시스템을 만들어서 현장의 문제를 개선한다는 내용을 작성했다. 제품이 만들어지고나서 정상 범위의 수치를 데이터화 하고, 현장 제품의 수치를 자동으로 입력되게 하여 정상/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기획했다. 그리고 실제로 시스템을 아주 간단하게 개발하여 샘플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첫 번째 괴물, 즉 나와 동규 둘 중 한명은 떨어진다는 데스매치 조건이 계속 나를 압박해왔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동규와 많이 친해졌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합격을 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최선을 다했다. 인턴 환영 회식 때도 새벽까지 집에 가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남아서 술을 계속 마셨다. 나는 술을 즐기지도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나만 집에 먼저가면 평가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화장실에서 토해가면서까지 계속 남아있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합격이 간절했고, 아마 동규도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