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모스트 페이머스>, <28주 후> 외 1

by 백치


<올모스트 페이머스>, 카메론 크로우


올모스트페이머스.png <Almost Famous>, 2000


한 꺼풀, 두 꺼풀, 그녀의 가슴에 닿을 때까지: 그녀는 17살, 아니 16살, 아니 15살. 이름은? 페니 레인, 아니 에밀리 벅만, 아니 레이디 굿맨. 누가봐도 그루피인 그녀는 사실 그루피가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록스타의 성적 착취에 내어주지도 않고, ‘스타’가 아니라 ‘록’에 충성하는 열성 팬이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이 오럴 섹스 정도는 해줄 수도 있다. 그녀의 나이브한 자기타협적 열정은 숫총각 칼럼니스트 윌리엄을 만나 중견 밴드 ‘스틸워터’의 투어버스에 오른다. 이것은 자기발견의 로드무비이다.

윌리엄은 고등학생 아마추어 락 칼럼니스트로 스틸워터에 대한 칼럼을 쓰라는 롤링스톤즈의 의뢰를 받고 여정에 동참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스틸워터는 미래가 없다)을 써야할 지, 이미 친구가 되어버린(사실상 유일한) 그들을 위해 거짓된 환상을 써야할 지 사이의 갈팡질팡이 곧 영화의 플롯이다. ‘거의 유명한’ 자들을 태운 버스는 반드시 이 진실과 거짓의 연옥을 통과해야만한다. “나는 불사신이다!”와 “나 취했어” 사이를 불시에 오가는 러셀을 보라.

이즈음 페니의 연극적인 독백을 통해 은연히 개입된 비행기의 모티프는 영화 전체를 통과하여 운행된다. 이 비행기는 주제와 이중도 아니고 삼중으로 엮여있는데, 그것은 성공이고, 탈출이고, 진실이다. 대형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스틸워터는 더 이상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윌리엄의 누나는 락의 언령을 받고 집안을 떠나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페니는 무질서한 현실에서 벗어나 모로코로 떠나고자 한다. 그러나 스틸워터가 상공에서 마주한 진실은 추하기 이를 데 없고, 오랜만에 누나를 만난 윌리엄의 반응은 반가움이 아니라 황당함(그 요사스런 옷차림!)이며, 페니는 애당초 모로코에 도착하지조차 못한다.

이쯤되면 과연 이 여행의 종착지가 어딘지 의문이 들만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윌리엄이고, 그의 구도는 페니와 맞부딪치며 이미 절정을 이루었다. 음독 자살을 기도한 페니에게 키스하고 그녀는 위장 속의 그 모든 추와 가식을 토해낸 바,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그렇게 깨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없다.

열성팬의 영혼(곧, 락이다)을 하이네켄과 맞바꿔먹은 러셀은 서서히 차오르는 죄의식에 못이겨 다시 페니에게 연락한다. 그녀에게 사과할 양으로 찾아간 주소는 다름 아닌 윌리엄의 집. 거기서 러셀은 일전 자신에게 매섭게 쏘아붙이던 윌리엄의 어머니를 만난다. 시기상 이것은 두번째 화해-반항적 로큰롤과 보수적 어머니의 화해다. 러셀은 어머니의 안내를 받고 윌리엄과 인터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세번째 화해다. 첫번째는 다름 아닌 윌리엄이 주선한-페니가 그에게 행한 것과 같은-어머니와 누나(예의 그 제복을 입고있는)의 그것. 윌리엄의 비행은 진심과 거짓의 이분법을 한바퀴 돌아 서로에게 닿고자하는 소통의 발단에 안착한다. 언어가 완전하진 않다지만, 적어도 에밀리 벅만은 레이디 굿맨과 각운이 맞지 않는가.



<28주 후>,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디요


28주후.jpg <28 Weeks Later>, 2007


영화는 어느 한 생존자 무리의 저녁 식사를 비추며 시작된다. 조촐하게나마 와인과 파스타로 구색을 갖춘 식탁,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던 도중 한 여자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낸다. 가망 없는 생환에 매달리는 모습에 짜증이 난 다른 생존자가 그녀를 꾸짖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앙이 찾아온다. 그렇게 희망은 시작부터 분노에 자리를 내어준다.

굴레는 위기의 순간 아내를 버리고 도망친 남자, 돈에게서 비롯되었다. 그의 유약함과 도덕적 오류는 곧 원죄가 되어 부메랑처럼 다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분명 죽었어야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아내 앨리스는, 자신이 감염됐음을 몰랐을 리가 없음에도 그에게 용서의 입맞춤을 허락한다. 자신을 버리고 간 것에 대한 분노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분노는 한 부부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식에게까지 퍼져나간다. 바이러스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분노 그 자체다. 가두려는 군인의 분노, 벗어나려는 시민의 분노, 무전기에서는 성난 욕지거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꺼진 듯 보였던 화마는 삽시간에 되살아난다.

죄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명의 군인이 부상한다. 의료장교 스칼렛과 저격수 도일인데, 전자는 면역체 보균자인 돈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도망쳐나왔고, 이 임무는 같은 사명을 가진 후자에게로 이행된다. 오로지 타인의 안식만을 위해 행동하는 두 사람은 최후의 순간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분노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묵시록의 순교자다.

태미는 감염된 아버지에게 물려 두려워하는 동생에게 ‘절대 너를 떠나지 않겠노라’고 약속한다. 아버지의 잘못을 고치려는 자식의 몸부림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 앤디의 유전자에 담긴 감염 치료의 희망,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씻을 수 있다는 성서적 희망 모두 끝내 도달하지 못한 채 분노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견된 결말이다.

카메라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창문 뒤에 갇힌 인물들을 비춘다. 돈의 아내가 그랬고, 돈이 그랬고, 격리실에 갇힌 민간인이 그랬고, 마지막으로 앤디가 그랬다. <28일 후>의 우리 속 원숭이처럼, 한순간 통제 속에 잡아놓은 듯 해도 분노는 매번 그 철창을 부수고 터져나온다. 악이 항상 승리하고, 선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없는 염세주의적 세계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을 위해 죽는 것 뿐이다.



<아메리칸 갱스터>, 리들리 스콧


아메리칸갱스터.jpg <American Gangster>, 2007


야망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 <아메리칸 갱스터>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새로운 할렘의 주인이 된 마약왕 프랭크와, 출처없는 비자금도 마다하는 청렴한 경찰 리치. 언뜻 정반대로 보이는 두 인물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몽상가라는 점이다. 프랭크는 첫 등장부터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원을 산 채로 불태우며 거리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대부의 혜안을 이어받아 중간자 없이 배포되는 새로운 시장을 구축하려한다. 리치는 이미 부패할대로 부패해버린 경찰계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맞아가면서도 자신의 지조를 저버리지 않고, 범죄자를 갖다 바치는 심부름꾼에서 법의 행사자가 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한다.

두 사람이 각자 몸 담고 있는 조직의 판이한 모습도 그들의 평행선을 겹쳐보이게 한다. 프랭크는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항상 꿋꿋하고 신사답게 굴 것을 명령하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반면, 리치의 동료들은 그가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을 매우 아니꼽게 여기고, 이는 결과적으로 리치의 가정생활을 파탄으로 이끌었다. 이 도덕적 모호함을 구분 짓는 것은 곳곳에 보이는 마약 중독자들의 비참한 말로 뿐이다.

선과 악의 중심에서 만나는 두 개의 거대한 힘은, 범죄자의 체포와 권선징악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힘- 혹은 꿈을 만들어낸다. 부패 경찰관의 척결이다. 영화는 개중 대표격이라고 부를만한 인물인 트루포 일당을 체포하며 끝나는데, 이들이 프랭크의 갱단과 다른 점은 어떤 변화도 없이 단순히 악을 재생산하기만 하는 집단이라는 데에 있다. 미래를 도모하는 일 없이 기존의 질서에 빌붙어 빨아먹기만하는 시스템적 모기들. 이것이 그들이 최종의 적으로 처단받는 이유다. 리치 - 프랭크 - 트루포로 이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의 정반합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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