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쓴 사나이>, 알프레드 히치콕
사건의 발단이 된 아내의 치통, 그녀는 치과의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준다.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며 턱은 점점 좁아졌지만 치아의 개수는 미처 줄어들지 못했다. 자리가 없는 사랑니는 옆으로 자라 하악을 압박하고 치통을 일으킨다. 이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니는 억울하게 체포당하기 전날 아침, 쌍둥이가 말싸움하는 것을 목격한다. 첫째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방해하지 말라며 둘째에게 불평하고, 둘째는 단지 하모니카로 화음을 이루려 했던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매니는 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면 화음이 되지만 늦게 들어오면 소음이 된다고 일러준 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음악 수업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집을 나선다. 이것이 두 번째 단서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 문간에 선 매니는 수수께끼의 남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연행된다. 필적 대조와 신원 확인의 더디고 고통스러운 절차를 끝낸 뒤 얼떨결에 범죄자가 된 매니는 곧장 유치장으로, 법원으로, 수용소로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옮겨진다. 매니가 할당된 감방에 들어가 짐을 채 다 풀기도 전에 간수가 다가와 보석금이 납부되었음을 알리고, 그는 순식간에 자유의 몸이 된다. 파란만장이 끝난 뒤 예의 문간에 선 매니는, 경찰에게 잡혔던 그 순간이 마치 ‘백만 년 전 일 같다’고 회고한다. 엉망진창인 그의 시간감각, 이것이 세 번째 단서다.
7500 달러의 보석금을 포함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된 매니와 로즈는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범행 당시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같은 날 묵었던 산장에 찾아간 부부는, 그곳에서 함께 카드 게임을 했던 두 손님의 이름을 듣고 온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주소를 알아낸 후 찾아간 아파트에서 매니는, 그들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한 번은 무관심하게 까르르 웃는 소녀들에게서, 다른 한 번은 뒤늦게 찾아온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이웃에게서. 아내는 광소를 터뜨리며 정신병의 전조를 보인다.
지옥과도 같은 재판과정, 목격자들의 일관된 증언으로 인해 가망이 없음을 깨달은 변호사는 판사에게 미결정 심리를 요구한다. 진이 다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온 매니에게 어머니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권하고, 매니는 자신의 방에서 한참 동안 예수의 그림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읊조린다. 그 순간 영화는 긴 긴 오버랩을 통해 매니의 얼굴과, 다른 가게를 털려고 하는 진범의 얼굴을 병치시킨다. 이는 영화의 플롯으로서는 ‘갈등의 해소’이고, 은유로서는 두 개로 나뉜 그의 자아- 매니의 얼굴은 로즈가 거울에 내던진 빗을 통해 두 편(범죄자 ‘크리스’, 자상한 남편 ‘매니’)으로 갈라진 바 있다-의 재통합이며, 또한 뒤죽박죽였던 개인적-사회적 시계의 동기화다.
마침내 무고가 입증된 매니는 좋은 소식과 함께 아내가 입원한 정신병원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로즈는 반기는 기색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당신’에게 잘된 일이라며 자신을 내버려 둘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그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치통-불협화음-누명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혼란의 여파다. 마지막의 지시문을 통해 가족의 상처가 결국 아물었음이 확인되지만 그 역시 2년의 시간이 지난 후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조국은 영어로 “Fatherland”, 즉 아버지의 땅이다. 부모 없이 자란 두 형제 데이미언과 테디는 아일랜드 내전 속에서 각자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산업시대 노동자의 상징과도 같은 철도 기관사 댄을 만난 데이미언은 즉각 그를 새아버지 삼아 내면의 조국을 형성한다. 반면 테디는 그를 단 열두 살의 나이에 신학교로 보내버린 무심한 공장주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새 자유국의 장교가 되어 영국의 하수인이 된 그는 평화유지라는 명목으로 동족ㅡ노동자 계급, 즉 데이미언과 댄ㅡ을 탄압한다. 테디의 아버지는 냉혹한 부르주아이며, 처칠이고, 체임벌린이다. 두 형제의 충돌은 형이 동생의 아버지를 쏘아 죽임으로써 끝이 나고, 테디는 머지않아 자신의 동생마저 제 손으로 처형하게 된다.
대물림되는 죽음은 일찍이 크리스의 처형에서 시연된 바 있다. 죽는 순간까지 독립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영국 대령을 처형한 데이미언은 곧바로 그들을 고발한 동네 꼬마 크리스 역시 처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비자발적이나마 영국의 국익에 기여했기 때문에 크리스는 대령의 아들이다. 며칠 후 데이미언은 시너드에게 크리스의 어머니와 함께 그의 묘를 찾아 여섯 시간을 침묵 속에 걸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 일은 이미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미하일의 죽음에서 벌어졌으며, 또한 데이미언 본인의 죽음으로 인해 시너드 역시 겪게 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삭막한 리얼리즘과 장소의 재방문으로 건조된 이 악순환은, 아버지의 땅을 세우기 위해 자식이 죽어야만 하는 모순과 그 끝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울부짖음만이 남을 뿐이라는 역사를 역설한다.
<전쟁의 사상자들>, 브라이언 드 팔마
베트남의 야지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분대는 느닷없는 폭격을 당하고 신병 에릭슨은 베트콩이 파둔 터널에 빠진다. 상반신은 지상에, 하반신은 지하에 나뉜 꼴로 오도 가도 못하게 고정된 그를 향해, 곧이어 한 베트콩이 입에 칼을 물고 서서히 접근한다. 다리 밑에 이르러 그를 찌르려는 찰나 메서브가 에릭슨을 끌어올리고, 다시 구덩이 위로 공격하려던 그의 시도는 메서브에 의해 저지된다. 베트콩(혹은 베트남 전쟁)은 지하, 즉 심상 아래서 들끓는 성적 위험으로서 그렇게 등장한다. 동성애적 전우애가 지켜주는 한 그들은 안전하다. 이야기는 분대의 구심점인 브라운이 기습을 받아 전사하면서 시작된다.
메서브는 다음 작전지로 향하는 중에 베트남 여성을 납치해 성노예로 쓸 것을 제안한다. 분대의 대다수가 농담일 거라며 웃어넘기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카메라는 돌연 시점 쇼트로 진입해 사냥감을 찾아 헤맨다. 브라운의 사망 후 파괴적 욕망의 대체재로 선택된 여자는 영어라곤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평범한 농촌 소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을 빌미로 철저히 타자화ㅡ정확히는 ‘VC화’ㅡ된 그녀를 베트콩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보는 것은 신병 에릭슨뿐이다. 분대장 메서브는 지휘체계를 강제하여 위에서 아래로 모든 병사가 한 번씩 그녀를 범할 것을 명령하고, ‘체리(즉, 동정)’는 소녀와 더불어 자신의 도덕적 순결까지 지켜야 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눈 여겨볼만한 씬은 소녀의 죽음이다. 그녀는 전투 중인 분대원들 사이에서 헤매다 클라크에게 잔인하게 난자당한 뒤 철도에서 떨어져 사망하는데, 카메라는 이를 에릭슨 - 소녀의 시체 - 미군의 시체 - 미군 보트 - 베트남군 보트 - 베트남군 시체 순으로 나열한다. 드 팔마는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억눌린 욕망이 발현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역한 에릭슨이 버스에서 잠드는 첫 장면과 병치되어, 그가 깨어나는 장면으로 끝나는 결말은 “베트남 전쟁을 한낱 악몽으로 치부한다”며 좌파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축소인 지는 의심스럽다. 드 팔마의 이력이 가리키는 그것의 무게를 차치하고도, 리비도의 영향에 있어 꿈만큼이나 중대한 무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오히려 ‘악몽’의 결말에서는 곧 렌즈가 정글이 아닌 인간 내면을 향해있음을 알아채는데 주안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