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너무 이른가
세월이 흐르면 지나간 자리에 반드시 무언가 남기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난다는데. 문득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무심코 스친 잔상에서 낯선 기운이 느낄 때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지금의 이 형상을 갖게 된 건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인상이 선하게 보인다는 평가는 아마도 힘든 세상 속에서 선의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인고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반면 잘 웃지 않는다는 인상은 삶의 고비마다 마주했던 긴장과 무게를 홀로 감당하며 침묵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찰나의 미소보다 깊은 고뇌가 가벼운 유희보다 묵직한 책임감이 내 얼굴의 근육과 결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가 되었을지도.
결국 인상은 생을 따라온 결과다. 내가 세상을 향해 가졌던 마음가짐. 타인을 대하던 태도,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해 온 의지들이 주름의 깊이와 눈빛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사람의 분위기가 더 짙어지는 것은 내면의 본질이 마침내 표면으로 드러나 안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겠다는 모호한 물음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명확할지도. 지금의 내 모습은 남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이다. 설령 그 형상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안에 치열했던 나의 생존의 기록과 인내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늘진 구석마저 내가 살아온 소중한 기록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세월 속에 비친 내 흔적들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았다. 나는 이렇게 버텨냈다. 그러니 그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오롯이 짊어지자. 남은 생은 더 맑고 단단해지기를 소망하며 지나온 세월 앞에 겸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