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km ⑨] 우리라는 이름의 위대한 영웅들

오버 페이스를 멈추고 마주한 삶의 안목

by 희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웅도 아닌데 왜 이토록 시련이 반복될까."


우리가 아는 영웅들은 초인적인 힘을 지닌 헤라클레스나 용맹한 아킬레우스 같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그런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나를 본다. 만약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마음의 상처로 인해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기어이 이 길과 마주한 결과, 이제는 별 같고 보석 같기만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고 끝내 이 자리를 지켜냈으므로, 이곳은 나의 길이 맞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본다. 어른들의 눈에는 당연하고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시련을 통과하며 매일 성장한다.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는 고통, 관계로부터 오는 갈등, 때로는 하기 싫은 공부를 참아내는 인내까지. 그 여린 어깨로 제 몫의 삶을 감내하는 아이들이야말로 내 눈에는 매일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이자 영웅들이다.


사실 나는 이 사회가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세상이라 여기며 살았다. 내 몫의 무대는 이미 끝났다고 치부하며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던 내가, 다시 이 삶의 반경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도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다.

"과연 이 길이 맞을까" 의심하면서도 끝내 나를 믿고 다시 손을 다잡아 준 그 용기. 다시는 세상과 차단된 채 지내야 했던 지독한 침체기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 간절함. 단절을 끝내고 다시 세상과 호흡하고 싶다는 그 뜨거운 생경함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 자체가 이미 영웅의 한 페이지다.


하지만 다시 내디딘 나의 발걸음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가혹했던 시련들은 종종 '무릅씀'에서 시작되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를 돌아보며 음미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이른바 '오버 페이스'가 화근이었다.


5년의 공백을 만든 경막 외 출혈 수술부터가 그랬다. 1년 넘게 이어온 시술을 이제 그만 받아도 될 시점이었음에도, 나는 의사에게 그 말을 전할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말았다. 워낙 살뜰하고 친절했던 원장님의 배려에 마음이 놓였던 탓일까, 아니면 고마움에 차마 내 몸의 목소리를 앞세우지 못했던 탓일까.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라는 그 한마디를 매번 입안으로 삼키며 후회하던 찰나, 결국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놓게 만든 대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던 웹디자인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십수 년을 살았던 동네였음에도 공부하러 가는 길이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는 것은, 이미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세상의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억지로 버텼고, 결국 장폐색이라는 사달이 나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욕심도 나를 눈멀게 했다. 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이성적으로 판단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를 도와주겠다던 그녀의 달콤한 말이 사실은 나르시시스트의 덫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혼자 힘으로 맨 땅에 헤딩하듯 블로그를 일궈가는 고단함보다, 타인의 손에 기대어 좀 더 쉽고 빠르게 가려했던 나의 조급함이 결국 안목을 가렸던 것이다


재입사하자마자 겪은 시련 역시 다르지 않았다. 관리 지역이 단순히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같아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지역을 옮겼고, 그로 인해 마주해야 했던 예기치 못한 이별들은 쓰라린 상처가 되었다. 8편에서 고백했듯, 그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들이닥친 발목 부상은, 어쩌면 나를 멈춰 세우기 위한 예고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러너스 하이'의 찰나에 50걸음만 더 달리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쿵 하고 고꾸라졌던 그날처럼, 나는 늘 조금 더 서둘렀고 조금 더 과했다.


그리하여 과거의 나는 모두 '앞선 마음'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독 나에게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내가 순리를 따르기보다는 거슬렀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서도 서두르는 나에게, 세상은 "현실을 똑바로 보라"며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 나를 일깨웠다.


이제 나는 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한, 시련은 세상이 생각보다 정직하다는 증거라는 것을. 나의 좁은 시야 안에서는 절대 수 없었던 지혜를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말이다.


아이들이 고집을 피우다 부모에게 야단맞는 것도 결국 순리를 거스른 탓에 마주하는 시련일 터다. 나 역시 삶의 속도를 앞지르려 안간힘을 쓸 때마다, 시련은 나를 멈춰 세워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했던 만큼. 그 난리법석 또한 제 궤도를 벗어난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삶의 지독한 배려였다.


진짜 영웅은 운명을 거스르는 자가 아니라, 삶의 엄한 가르침 뒤에 숨은 순리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자다. 들이닥치는 폭풍우를 멈출 수는 없어도, 현실을 직시하면서 묵묵히 젖은 몸을 말리며 다음 걸음을 준비할 줄 아는 인내.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위대한 삶의 힘이었다.


현실이라는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때로는 서두르고 때로는 넘어지면서도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과 나. 그 치열하고도 솔직한 뒷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응원이다.


우리는 이미 자기 삶의 위대한 영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시속 4km ⑧] 넘어진 자리가 단단한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