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km ⑩] 자연스러운 자리로의 로그인

by 희원

차를 몰고 가다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 선다. 예전 같으면 조바심에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시계부터 살피며 마음을 졸였을 시간. 고작 2,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대기 시간이지만, 이제 나는 양손으로 운전대를 가만히 쥐고 그 찰나를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짧은 멈춤 사이로도 반짝이며 눈에 들어오는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서다.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분주히 날아가는 까치 한 마리를 지켜본다.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왼쪽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시선을 맞춘다. 인근 아파트 단지의 숲으로 향하는 걸 보니, 3월의 봄을 맞아 새 보금자리를 단장하려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허공에 그네 의자처럼 매달려 여유롭게 세상을 굽어보는 하얀 CC카메라의 뒷모습이 저리도 앙증맞았나 싶다.

바람 따라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다 바닥에 툭 주저앉는 낙엽 한 조각까지. 마치 순리에 따라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모든 풍경이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예전의 나라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물렁한 생각으로 무심히 흘려보냈을 풍경들이다. 3월의 찬바람 속에 나비가 날아다녀도 그저 "계절을 잊었나 보다" 하며 지나쳤을 테니까. 하지만 5년여의 긴 공백을 지나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이제 나는 사물뿐만 아니라 내 눈앞의 모든 것이 외면할 수 없는 문장이 되어 수시로 가슴에 읽힌다. 굳이 애써 들여다보지 않아도 단번에 '팍' 하고 와닿는다.

책을 읽으면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읽히듯, 짧은 문자 하나에서도 상대의 온도가 느껴진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의 뒷모습에서, 곁에 앉은 동료들의 사소한 몸짓에서 그들의 속마음이 한 컷의 삽화처럼 그려진다. 때로는 그 투명함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면서도 내 안의 평온을 지켜낼 수 있는 나만의 '유연한 방패'가 생겼음을.

그리하여 더 이상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이 삶이, 속 시끄럽지 않아 더없이 좋다. 하나씩, 하나씩 나를 지키는 연습을 한다. 몸이 도저히 아니다 싶을 때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미팅조차 과감히 제쳐둔다.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수차례의 사고와 잔병치레를 통해 뼈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체면 때문에 지금 당장을 모면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며 기쁜 나머지 모든 것을 함께하려 했던 동료들과의 식사나 차 한잔의 시간도 이제는 정중히 내려놓았다. 급한 식사 습관과 만성 위염에 해로운 커피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성당에서의 봉사 활동도 남들이 뭐라 하든 아직 내 몸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이 모든 선택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내 안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주는 나만의 길이다. 불편함마저 기꺼이 껴안으며 나는 나만의 보폭을 찾아간다.

시련은 '모든 것에는 제 때가 있다'는 사실을 내 마음 깊숙이 못 박아주고 떠났다. 나를 시속 4km의 풍경 속으로 풍덩 빠뜨려 놓고는, 아주 멀리서 작별 인사를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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