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는 어느 봄날 먼 곳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천둥소리 같다.
제1부 너 없는 봄날 너에게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너 없는 봄날'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여느 화창한 봄날과 같지 아닐진대,
이창훈 시인은 그래도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조화造花
꽃이 되고 싶었다
꽃으로 피고 싶었다
너만의 꽃이 되어
네 눈 속에
네 가슴 한복판
너만의 꽃으로 피어나고 싶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햇살 한 줄기 내려오지 않아도
뿌리내릴 뿌리 하나 없어도
.....
.....
너 없는 봄날
너에게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그의 노래는 어느 봄날 먼 곳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천둥소리 같다.
빛이 들지 않는 구석진 곳에 방치된 가짜 꽃에 새삼 눈길이 간다.
너는 꽃이 되고 싶었구나
나도 너의 꽃으로 피고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특별한 꽃이 되고 싶다.
시인의 노래로 화사하게 물들고 싶은 봄날이 저만치서 서성인다.
조화造花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시인의 마음과 닿는다.
제2부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다
고슴도치
누군가 박은 못처럼
밖에서 들어와 박힌 것이 아니다
가시는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다.
생살에 박혔던 가늘고 뾰족한 거스러미,
누군가에겐 내면으로부터 깊이 박힌 떼어낼 수조차 없는 근본이었구나!
내 안의 뿌리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가 혹 너를 향해 있다면 이젠 그만 걷어내고 싶다.
제3부 길은 멀리 뻗어있고 해는 저문다
화양연화花様年華
.....
사라진다는 것
시간의 입술이 끝내 입맞춤하는 것들이
지는 꽃
침묵하는 돌
피가 흐르지 않는 몸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뒤늦게 알겠지만
어쩌면 적멸이 아닌
소멸을 향해
소멸이 결코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길
그것이 바로
이 생이 가는 길이라 해도
.....
노을이 곱다. 인생과 비교해 보자면, 살아생전 아름다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인생은 사라져 없어지는 적멸(寂滅)이 아니고 사라져 없어지는 소멸(消滅)이라는 시인의 노래에 주목한다.
반입자와 소립자가 서로 합체, 그 정지 에너지를 다른 입자 형태로 내보낸다는 물리학의 그런 과정이란 말인가!
소립자와 그 반대 입자가 만나면 높은 에너지를 발생하면서 질량이 없어진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 삶에서도 존재하는 것일까?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후 물질의 모든 질량이 항상 일정하다면 소멸은 또 다른 형태의 질량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김수환 추기경께서 삶은 '삶은 달걀'이라고 경직 상태 청중들을 향해 유머를 날리신 적이 있다.
항상 뻣뻣하게 고개를 곧추세우며 바삐 살아온 삶을 잠시 되돌아본다.
이창훈 시인의 화양연화는 앞만 보고 달리던 삶의 방식을 반추하게 한다.
제4부 누군가를 한 생을 다해 기다려 본 적이 있냐고
나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움이 전부일 거라고
지나가는 바람이 말했다
.....
.....
누군가가 떠난 자리
말없이 손 흔들다
해는 지고 어둠은 내려
차마 뒤돌아서지 못해
그 자리 붙박혀 눈 밝혀
누군가를
한 생을 다해 기다려 본 적이 있냐고
지나가는 바람의 뒷덜미에 말했다.
이 '나무'는 이무하의 노래 '그리움'이 오버랩된다.
그리움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애잔하고 슬프다.
지나치는 바람을 돌아보며
'누군가를 한 생을 다해 기다려 본 적이 있냐'라고 묻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독자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제5부 이 별에 우리는 사랑하려고 왔다
이창훈 시인은 현직 국어교사다.
5부에서는 학생들을 아끼는 시인의 사랑방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종례 _ 교실일지
얘들아
잘 나가기 위해 오지 않았다
잘 살기 위해 왔다
성공하려고 오지 않았다
성장하려고 왔다
마주 보고 서로의 눈을
말없이 들여다 보아라
마주 서서 서로의 손을
지금 꽉 맞잡아 보아라
이 별에 우리는
사랑하려고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vuVvVZT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