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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중랑천의 사계

2021년 3월 서울을 떠나오면서 남겼던 글!

by Someday


3월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 아직 차갑기만 한 중랑천 강바람


장미터널 10 게이트에서 중랑천 둑으로 올라선다.

아직 올까 말까 망설이는 봄기운을 찾아 둑길을 기웃거린다.

작년 5월 말, 장미터널에서 꽃길만 걷던 사람들 환한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르지만, 장미터널엔 아직 장미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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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교’를 지나, 제1 보도 육교에서 중랑천으로 내려간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멀리 가지도 못하는 요즘, 가까이 중랑천이 있어 위안이 된다.

착한 아이처럼 생활 거리두기 예방수칙을 잘 지키며 얌전하게 지내고 있지만, 감기만 걸려도 목이 젤 먼저 붓고 아픈 나, 최근에도 컨디션 균형이 깨지면, 목이 가장 먼저 '아파~!'라고 반응한다.

‘울 엄니는 폐암으로 돌아가셨지.’ 요즘,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 차갑기만 한 중랑천 강바람이 쌩쌩 소리까지 지르며 반기는데, 그 드센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니, 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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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교에서 월릉교 사이, 자전거로 달리던 중 찍은 사진 (오래 된 사진, 2015년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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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교에서 살곶이 공원까지 나홀로 하이킹 (2015. 3월 27일) / 살곶이 공원에 세워둔 낡은 내 자전거

바싹 마른 갈대는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누렇게 빛바랜 겨울옷을 그대로 걸친 채, 여윈 모습으로 흔들린다.

중랑천 강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움츠러드는 내 어깨, 저절로 자라목이 된다.

바람이 잠시 잦아들면, 움츠러든 목을 쭉 빼고, 중랑천 긴 물길을 두 눈에 담는다.

제2 보도 육교 앞에서 선다.

지금은 누렇게 빛바랜 곳, 지난해 늦가을까지 대단지 코스모스 군락을 이루던 멋진 곳이었다. 찬란하게 우주를 향해 꿈꾸던 코스모스의 추억을 폈다 접으며, 다시 중랑천 둑길을 향해 육교로 올라선다.

매서운 강바람이 불 때마다 내 눈은 저절로 작아진다.

작아진 눈 속으로 파릇파릇 움트는 연녹색 새싹과 노란 산수유 꽃이 비집고 들어오고, 꽃봉오리 머금은 벚나무에서는 사이좋은 직박구리 부부가 경쾌한 소리로 지저귄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어수선해도, 시간은 흐르고, 봄을 기다리는 3월도 예년처럼 바삐 지나쳐 간다.

눈부신 3월 햇살 사이로 게슴츠레 뜬 작은 내 눈 속으로 봄은 살며시 비집고 들어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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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게 빛나는 5월

작년처럼, 또 그전 작년처럼 중랑천 둑길 장미터널은 그렇게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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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 장미축제'는 '코로나19'바이러스 전파와 확산으로 열리지 못했지만, 만개한 장미꽃 무리, 점점 짙어지는 초록빛 녹음은 계절을 비껴가지 않는다.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던 이기적인 모든 일상이 멈칫 하고 머뭇거리고 있어도 시간은 흐르는구나!

계절의 여왕이라던 찬란한 5월도 제 할 일 다 하고 우리 곁을 지나쳐간다. 내년에도 장미꽃은 이렇게 빛나도록 아름답게 피겠지만, 어느새 우리 얼굴 일부분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언제 떼어낼 수 있을지.

중랑천 변 둑길, 장미꽃 터널서 꽃길을 걷는다.

아름드리 벚나무는 지난 4월 만개했던 벚꽃을 추억하며, 초록 녹음 잎으로 갈아입었다. 중랑천 변 만물이 아침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사람들은 장미터널 속을 들고난다. 장미꽃 만개한 터널 위로 초록빛이 쏟아지는 이런 날엔 왠지 모르게 힘도 솟고, 기분도 업 된다.

하늘로 향하려는 붉은 장미꽃 열정이 사람들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고, 나무기둥을 타고 사이좋게 이웃한 노란 장미와 분홍 장미꽃은 이웃처럼 정겹다.

빨간색 장미꽃은 뜨겁고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수줍은 분홍색 장미꽃은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사랑의 맹세만으로도 행복해 보이고, 흰색 장미꽃 순결함과 청순함은 잠시 옛사랑 추억에 젖게 한다. 노란색 장미꽃은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젊은 여인들을 불러 세운다.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장미꽃도 초록 싱그러움과 안고 있어 외롭지 않다. 각기 제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서로 비교하거나 부러워하거나, 투정 부리지 않고, 모두 특별하고 아름답다.

장미꽃 만발한 중랑구 장미터널 속을 거닐어 보라!

행복이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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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유채밭 풍경, 2015년 5월 / 2017년 5월


중랑천 변 유채꽃 군락도 장관이다.

유채꽃 노란색은 밝고 쾌활해서 봄의 생동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군락을 이루어 피는 모습이 '함께' 자~알 어울리는 편안함과 포근함을 전한다.

중랑천 변(중랑교와 겸재교 사이 중랑구 쪽)에서 만나는 원두막은 오래전 여름방학 때, 참외 따서 먹던 시골 이모님 댁 원두막을 떠오르게 한다. 저승 가신 이모님은 다시 만날 수 없지만, 중랑천 변 산책길에서 마주하는 원두막에선 두서없이 떠오르는 소중한 옛 추억 가만히 머물다 간다.

같은 노란색 꽃이어서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유채꽃 군락 속에 노란색 붓꽃도 몇 송이 피어 있다. 유채꽃이 붓꽃까지 함께 품어 군락을 이뤘다. 동색이 주는 동질감이 편하게 전해진다.

멀리 나서지 않아도, 이렇게 노랗게 물든 유채꽃 군락을 만날 수 있으니 이도 커다란 기쁨이다.


여름이 간다.

중랑천 둑길, 분수대, 물놀이장과 수영장 여름날 스케치

토요일 오전, 중랑천 둑길은 한가롭다.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짙은 녹음 사이로 흐르니, 한 주 전과 확연히 다른 숨결이 전해진다.

매일 다른 숨길을 전하는 초록 잎 무성한 나무 터널을 지나며,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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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끝자락

무더위를 밀어내니, 마냥 좋을 줄만 알았더니, 이별은 역시 아쉽다.

뜨거운 햇살, 뭉게구름, 무더운 바람, 중랑천 변 짙푸른 무성한 나무들, 보라색 맥문동 꽃무리, 청춘을 접고 시들어가는 장미꽃과 주황색 능소 화까지 함께 떠날 채비를 하려는 여름을 향해 "안녕!"이라고 말한다.

걷다 보니, 때마침 지나치던 겸재교와 중랑교 사이 둑길 아래 있는 분수대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솟구친다.

한여름에도 매번 침묵하던 휑한 분수만 보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가동시간에 맞춰 지나친다.

변덕스러운 내 마음, 벌써 철 지난 물줄기처럼 느껴지다니. 이 분수대는 매년 8월 31일까지만 가동한다.

여름이 가고 나면 가을, 겨울 다시 봄이 오겠지.

뚜벅뚜벅 언제든 이 정다운 둑길을 지나치면, 나는 이 분수대 물줄기와 또 마주 할 것이다.


둑길엔 활기찬 젊은이들이 달리기를 하고, 쩔뚝거리며 가다 쉬다 반복하며 걷는 어르신들도 많다.

나는 천천히 또 빠르게 반복하며 걷는다.

나는 어디쯤 걷고 있을까? 이 사람들 중간쯤, 아니 어르신들 쪽에 더 가깝다. 올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어느새 이렇게 지나쳐온 세월이 남아있는 세월보다 더 많은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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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교를 지나 장평교에 이르면, 물놀이 수영장이 잘 갖춰져 있다.

한 여름 내내 아이들로 북적이던 이 수영장은 8월 25일까지만 연다.

바로 오늘이다. 중랑천 물놀이장도 안녕!

지난주 일요일쯤이었을까?

신나게 노는 아이들 모습을 몇 장 폰 카메라에 담은 생각이 났다.

오후 5시~ 6시쯤, 장안교 상류 둔치에 있는 야외 수영장 현장 스케치였다. 산책을 잠시 멈추고, 폰 앨범을 열었다.

더위를 살짝 비껴가는 시간, 가족단위 수영 객들은 지칠 줄 모르고 물놀이와 수영에 열중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왁자지껄 웃고, 소리 지르며 즐기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름휴가, 이젠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온 가족이 중랑구에서 마련한 이 멋진 물놀이장, 수영장엘 오면 한여름 무더위쯤 다 날려 보낸다.

중랑천 물놀이장과 수영장은 6월 24일 개장, 8월 25일까지 매일 10시~18시 50분까지 1,2부로 나누어 운영한다. 수질관리를 위해 이동 형 여과 장치도 설치했다고 하니, 건강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겠다.

여태껏 아이들 물놀이장으로만 생각했는데, 길이 50m에 달하는 국제규격 성인용 수영장과 25m 어린이 용 수영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어, 놀랐다. 진즉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다 성장해버린 노친 네이다 보니, 일반 성인들과는 상관없는 시설로만 생각했다.

이곳은 평일 200~300명, 주말 1,500 여 명씩 애용하는 중랑천 핫 플레이스다.


9월이 오고~

토요일 이른 밤 중랑천 둑길 산책은 바람도, 체감 온도도 딱 좋다.

낮게 드리워진 무거운 구름조차 포근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문득,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비우고, 어두워지는 중랑천 둑길을 걷는다.

집에서 분초를 다투며 쏟아지던 어두운 TV 뉴스로 살짝 흥분한 상태였지만, 어느새 몸과 마음에 평온이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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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작은 도서관이 아직 불을 밝히고 있다.

겸재 정선 관련 도서를 많이 담고 있는 곳이다. 겸재교 멋진 경관과 어울리듯 여행도서도 많이 비치되어 있다.

도서관 2층 테라스에선 겸재교와 중랑천이 한눈에 보인다.

겸재교 흰 조명이 가을밤 운치를 더해 준다.

사람들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짙은 회색 구름도 가던 길을 멈추고, 여유를 부린다.

동부 간선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여전히 바쁘지만.

서쪽 하늘 끝자락에 노을 잔영이 남아있다.

걷는 속도를 빠르게 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마에 땀방울이 배어난다. 고됐던 한 주 피로를 풀어주는 땀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평범한 일상이 지속된다.


11월, 우주 질서와 조화 '코스모스' - 중랑천 코스모스 군락


중랑구 중랑천, 이화교와 월릉교 사이 둔치엔 대단위 코스모스 군락이 있다. 코스모스는 늦여름부터 피우던 하늘거리던 꽃들을 11월 중순에 접어드는 오늘까지 변함없이 흔들리며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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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0, 중랑천 코스모스 군락


연약한 듯 항상 흔들리나 휘거나 꺾이지 않고, 더없이 가벼워 보이나 경박하지 않고, 제멋대로 흔들리는 듯하지만, 무리를 이루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이 꽃 이름이 '코스모스'인가 보다.

코스모스 cosmos는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와 세계를 나타내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국화과 한해살이풀인 이 하늘거리는 분홍, 자주, 흰색 조화로운 꽃 이름이기도 하다.

형형색색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과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귀한 이름을 친구들은 내게 애칭으로 붙여주곤 했다.

'말라깽이'라 하지 않고, '코스모스'라 불려서 내심 무척 좋았었다.

나는 작은 우주, 코스모스란 별명을 평생 자랑처럼 지니고 산다.

1주일 넘게 감기몸살로 고생 중이다.

지난 수요일엔 병원서 혈관주사와 엉덩이 주사를 함께 맞았다.

감기몸살로 한꺼번에 주사 2대를 같이 맞아본 건 이 번이 처음이었다.

체온계는 38.9도를 나타냈고, 온몸에 미열과 함께 수족이 저릴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남편'묵'이 먼 길(출장)에서 돌아와 함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되는 날이다.

이젠, 주말부부 그만하고 함께 붙어서 토닥거리며 살고 싶다.

-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똑똑해진다. 실제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실감했던 사실이다. 그런데 늙은이는 아프고 나면, 파삭 더 늙을 뿐이다.

그러나 이도 삶의 질서이고 조화다.

중랑천 변 코스모스 군락에 서니, 아름다운 조화로움에 힘이 난다.

코스모스같이 하늘거리는 몸으로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새 나이만 들어 잔병치레는 자주 하고 회복은 더디다.

좀 서러운 질서이고 많이 아쉬운 조화다.

암튼 누워있는 것보단, '묵'과 함께 중랑천 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기분전환이 된다. 집 가까이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새로운 한 주엔 회복된 몸으로 건강한 시간을 영위하고 싶다.


11월 말, 흔들리는 억새처럼 내 마음 나도 몰라!?

중랑천을 뒤흔드는 억새 무리 위로, 수송 열차는 떠나고.

은빛 억새는 중랑천 변 속살거리는 바람에 살랑살랑 넋 놓고 기댄다.


anigif.gif 이문 철교 위를 지나는 정유 수송 열차


해는 기울어 가고, 갑자기 매섭게 몰아치는 가을바람이 차갑다.

억새는 한꺼번에 몰려드는 찬바람도 마다하지 못한다.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지만,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고단한 모습이 애처롭다.

지금, 나와 딸도 은빛 억새처럼 흔들거리며 중랑천 변을 걷는다.

우리도 함부로 꺾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억새처럼, 갈대처럼!

중랑교 중앙선 철교와 이화교 사이에 있는 이문 철교 위로 정유 수송 열차가 지나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위로 둥근 통을 긴 꼬리처럼 달고 사라져 간다.

정유 수송 열차를 보니,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속에 나오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주인공 'JR'이 주인공 '바르다' 눈과 발을 대형 사진으로 찍어 둥근 통 위에 붙였다. 이 움직이는 예술품은 ‘바르다’ 눈과 발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싣고 레일 위로 사라져 갔다.

천변을 뒤흔드는 억새 무리 위, 이문 철교 위로 수송 열차가 지나간다. 경원선(1호선)과 중앙선을 연결하는 이문 철교는 화물열차 수송을 담당하는 일반 단선 철교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저 열차 위로 딸과 함께 한 오늘 이야기를 담아 보낸다.

은빛으로 물든 가을 중랑천 변, 가을 겨울 봄과 여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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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잿빛 세상, 흰 눈 - 중랑천이 보이는 아침

5일 만에, 내 집에서 아침을 맞는다.

중랑천 위로 안개가 자욱하더니, 어느새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인다.

어제, 광주 송정 역 발 17시 54분 KTX에 몸과 짐을 실었다.

밤새도록 마음은 남도에 두고 온 듯 허전한 기분이었는데,

흰 눈 내리는 중랑천을 바라보니, 밤사이 그 마음도 이곳에 함께 와 있었구나!

안개 때문인지, 흐린 세상 탓인지, 흰 눈조차 잿빛으로 물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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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중랑천에 어둠이 깃들다.

시리도록 추운 하루가 지친 몸의 균형을 깨트리고, 마음까지 아프게 한다. 포근한 눈이 아니라 매섭고 시린 눈이다.

'아프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파란 하늘빛이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던 오늘 하루도 어둠에 묻힌다.

쉬지 않고 흐르는 중랑천 물 위로, 수많은 불빛들은 어제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머물다 흐트러진다.

이렇게 추운 밤엔 새로운 날이 오리라던 확실한 기대조차,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만다. 겨울밤 풍경에 꽂힌 내 마음까지 차갑고 시린 밤이다.

화창했던 12월 어느 날

11월 말부터 서울 중랑천 장평교 아래 있는 중랑구 야외 수영장에 커다란 고릴라와 대형 독수리가 등장해, 시민들 호기심을 자극하고 하고 있다. '부안군과 함께하는 중랑구 볏짚 아트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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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으로 만들어진 고릴라와 독수리의 거대한 모습이 무섭다 기보단 사랑스럽기만 한데, 볏짚이 주는 옛 추억과 따스함이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볏짚 아트 전시회는 전북 부안군 볏짚 축제 위원회 후원으로 열리고 있다. 겨울 내내 텅 비어 있던 수영장과 물놀이장이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하며, 2020년 3월까지 열린다.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밤엔 출입문이 폐쇄되지만,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돼 있어 밤에도 멋지다.

한 겨울 중랑천, 매서운 강바람이 을씨년스럽다가도, 중랑천 볼거리, 놀 거리, 쉴 거리를 만나면, 지친 일상이 다시 위로받고, 힐링된다.


1월, 꽁꽁 얼어붙은 중랑천 - 청둥오리와 거실 창가에서 만개한 꽃, 심비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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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를 뚫고 달려온 새해 1월도 20여 일이 지나간다.

어제부터 중랑천도 꽁꽁 얼어붙었다.

아침마다 찾아오던 청둥오리 대가족도 오늘은 3마리밖에 보이질 않고.

따스한 창가에서 바라다 보이는 중랑천이 을씨년스럽다.

청둥오리 가족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한 모습이다.

꽁꽁 언 중랑천에서도 모두 제 할 일에 여념이 없다.

요즘, 외출만 하면 추워서 덜덜 떠는 내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중랑천엔 동장군이 나타났는데, 거실 심비디움은 겨울 햇살 듬뿍 받으며, 그 아름다움을 굽힐 줄 모르고 피어있다.

심비디움은 고고하고 도도해 보이나 거만해 보이지 않는 기품이 흐른다. 뜻밖에, 향기가 전혀 없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실내에서 함께 살기엔 딱 좋은 꽃이다. 4일 전, 이미 만개했다고 생각했던 이 꽃은 아직까지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고고함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꽃들은 중랑천을 엄습한 동장군조차 개의치 않는 듯하다.

나도 이 꽃들과 함께 햇살 가득한 8층 거실 창가에 서있다.

심비디움은 춘화 속 Cymbidium 난초의 총칭이라고 한다.

화려하고 색깔이 다양한 꽃이 피며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라고 하는데.

심비디움은 고고하고 도도해 보이는 꽃이나

거만해 보이지 않는 기품이 느껴진다.

아직 새봄은 멀리 있지만, 이 긴 겨울도 한두 달 지나면,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겠지.

살아오는 내내 겨울 이별은 슬프지 않았는데, 올해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60대에 보내는 겨울 이별은 슬프고 애잔하다.


이 글은 서울을 떠나오면서 중랑천의 사계를 스케치했던 글이다. 특정일을 표시하지 않은 사진은 2020년 중랑천 사계절 풍경 (주주 2021. 3. 4. 12:0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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