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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현대시의 출발, 보들레르 『악의 꽃』

앨버트로스(신천옹, 信天翁)를 다시 만나다!

by Someday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중 한 권이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1821.4.9 ~ 1867.8.31)『악의 꽃』이다.

최근 종이책으로 발간한 『주주와 레드루의 먼 나라 여행』에서 에즈 마을 절벽을 다시 접하면서, 보들레르 시 속에 등장하는 '앨버트로스'를 더 만나고 싶어서였다.

이 책에는 보들레르의 21편의 시가 담겨있다.

'세계 시인선 7' 『악의 꽃』으로 옮긴이는 황현산이고, 펴낸 곳은 (주)믿음사


13쪽에 실린 『앨버트로스』 - 1859년 낱장으로 인쇄된 적이 있다.

『악의 꽃』 재판에 수록됐다.

보들레르는 고결한 정신이 저주를 받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속되고 고약한 세상에 유배된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낭만주의적 신화가 시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세상을 향해 그들의 몰이해를 넘어 잔혹함까지 강조한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앨버트로스(albatross)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커다란 바닷새 앨버트로스를 붙잡는다네.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태무심 하게(殆無心 하다) 나르는 이 길동무들을.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가엾게도 그 크고 희 날개를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뜨리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

방금까지 그리 아름답던 신세가, 어찌 이리 우습고 추레한가!

어떤 녀석은 파이프로 부리를 때리며 약을 올리고,

또 다른 녀석은, 절름 절름,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내네!


시인도 그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 구름의 왕자,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의 야유 소리 한가운데로 쫓겨나선,

그 거인의 날개가 도리어 발걸음을 방해하네.


에즈 절벽에서 '앨버트로스'처럼 날아오르고 싶다!

에즈 마을 골목길을 오르면서 눈은 지중해 풍경에 빠지고, 머릿속엔 니체(1844~1868)가 그린 초인에 관한 생각들이 들고 난다.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중세 골목 풍경이 고즈넉하고 따사롭다.

그런데 별안간 불어오는 드센 해풍에 한 번 휘청이고 나자, 시대를 앞서 살다 간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1821~1867)의 '악의 꽃'에 등장하는 새 ‘앨버트로스’(신천옹)가 생각났다.

뱃사람들에게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희롱당하던 애처롭던 앨버트로스를 ‘악의 꽃’ 속에서 이곳 지중해 절벽 위로 불러내고 싶다. 앨버트로스는 2m 넘는 날개를 우아하게 펼친 채 고고하게 하늘을 날아야 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런 천상의 새지만 배 위로 끌려 내려가면 서툴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뱃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가능성을 향해 늘 멋지게 비상하던 날개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지고, 그 근사한 날개 때문에 평지 이륙도 힘겹다.

배 위도 평지도 앨버트로스가 있을 곳은 아니다.

에즈 마을 해안가 절벽 위에서라면 이상을 향해 다시 날아오르지 않을까?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면 기류를 이용해 활강하듯 날아오를 것이다.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 살다 간 보들레르도 지상에선 항상 아프고 외롭고 힘들었던 이상주의자였다.

감히 보들레르의 새, 앨버트로스를 이곳 절벽으로 불러와 함께 지중해 위로 솟아오르려 꿈틀댄다!

나도 어쩌면 시인과 새처럼 고단한 현실 위로 고고하게 날아오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https://brunch.co.kr/@6fe5671e95844e0/37


0.jpeg?type=w966 혼혈 배우인 잔 뒤발은 실력 없는 연극배우였으나, 보들레르에게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연인이었다. / 21편의 보들레르 시

보들레르의 시는 현대시의 출발점이 된다.

보들레르 이후로부터 전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오늘날 우리가 접하게 되는 현대 시인 셈이다.

그는 19세기를 살다 갔지만, 20세기와 21세기를 현대시의 지평을 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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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악의 꽃』이 출간된다.

이 시집은 당시 도덕적 가치관으로는 충격적이었다.

보들레르는 법의 심판으로 벌금까지 물고, 여섯 편의 시를 삭제당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힘든 나날을 보낸다.

4년 후인 1861년 삭제된 6편의 시 대신 35편의 시를 더하여 『악의 꽃』 재판을 출간한다.

그는 "잔학한 책 속에 자신의 모든 심정, 애정, 종교, 증오를 쏟아부었다"라고 했다.

『악의 꽃』은 시작과 끝이 있는 '건축'과 같다.

『악의 꽃』은 '우울과 이상', '파리 풍경', '술', '악의 꽃', '반항', '죽음' 등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우울과 이상'은 보들레르의 예술가로서의 삶과 미학 전체를 이른다.

2부 '파리 풍경'은 도시적 정서에 시적 가치를 담아 문학적 현대성의 예시를 보인다.

3부 '술'은 정신과 감각을 확대하기 위한 인공적인 수단을 예찬한다.

4부 '악의 꽃'은 당시 풍속과 문화에 대한 보들레르의 반항이 그대로 담겼다.

5부 '반항'은 기독교를 향한 그의 대항이 드러난다.

6부 '죽음'은 진정한 삶의 개혁을 노래하지만, 그것은 미지에 속할 변혁의 전망이다.


이 책에는 재판된 『악의 꽃』 126편 중 보들레르 시 세계에서 특히 중요하거나 널리 알려진 21편이 담겼다.

7쪽 『독자에게』 - 『악의 꽃』 초판이 발간되기 2년 전 1855년 [양세계평로]에 처음 발표했다. 초판 재판 모두에서 번호 없이 시집의 첫 시로 실린 '서시'로 보면 된다. 예술가는 악의 본질을 그릴 때도 성실한 윤리적 고뇌를 지녀야 한다는 시인의 미학적 윤리관이 담겼다. 그러나 마지막 시구에서 밝히듯 보들레르의 '악'은 독자에게도 해당된다. 시인과 독자를 같은 자리에 나란히 놓은 것도 현대적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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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메지스트: 키가 세 배나 큰 자(者)라는 뜻으로 전통적 마술과 신비학의 신인 '헤르메스'Hermès Trismégiste에게 붙이던 말

*물 담뱃대: 아편을 피우는 기구


47쪽 『가을의 노래』 - 초판에는 실리지 않았던 시다. 1850년 [당대 평론]에 처음 발표, 재판에 추가됐다.

'마링 도브룅' 시리즈에 속한다. '푸르스름한 빛'의 '갸름한 눈'을 가졌던 여배우 도브룅은 보호자 역할을 하던 보들레르를 1855년 떠났다가 1859년 재회한다. 보들레르에게 가을은 회한의 계절이다.

노리스 롤리 나와 가브리엘 포레가 이 시에 곡을 붙였으며, 프루스트의 『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에서도 이 시가 언급된다.

이 시는 우리니라에서도 가장 먼저 소개된 보들레르의 시 가운데 하나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시집이라 일컬어지는 김억의 『오뇌의 무도회』(1921년)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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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쪽 『여행』 - 1859년 일부 낱장으로 인쇄, 같은 해 [프랑스 평론]에 발표됐다. 『악의 꽃』 초판과 재판에 모두 마지막 시로 수록됐다.

이 시는 프랑스 여행작가인 막심 뒤캉(Maxim du Camp, 1822~1894)에 헌정된 시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서구 문명인들은 대부분 지리상 발견을 끝냈으며, 지구 위 어디에도 '권태'와 '압제'와 '죄악'에서 인간 '어리석음'을 벗어난 삶은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여행자들이 천신만고의 여행에서 얻은 것은 '쓰디쓴 지식'이었고, 뒤캉 또한 과학적 진보의 신봉자였으므로 보들레르의 조롱을 당한다.

인간이 만든 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며, 보들레르가 주장하는 '원죄에서 벗어나는 일'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남아있는 하나의 여행은 '죽음'뿐이다.

죽음의 밑바닥에서 '새로운 미지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죽음을 걸고 이 삶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여 삶 자체를 본질적으로 개혁한다는 말과 통한다.

이것이 『악의 꽃』 시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이다.


5.jpeg?type=w966 보들레르의 시 『여행』 중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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