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맞은 첫날 아침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에즈(에제) 마을로 향한다. 니스에서 에즈까지 전세버스로 20여 분 걸린다. 오늘(3월 8일)은 날씨도 맑고 청명하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어제와 달리 온화하고 부드럽다.
차창으로 보이는 니스의 아침 해안 풍경, 애니메이션
에즈 마을 주차장 도착!
에즈 마을 주차장, 소형 기념품 파는 좌판대 / 관광객들에게 음식점과 호텔을 연결해 주는 곳 같긴 한 데?
지중해 절벽 위, 독수리 둥지 같은 에즈 마을
에즈 마을은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위치한 주민 3천 명이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해발 427m 높은 절벽에 독수리가 둥지 튼 모습을 닮아, '독수리 둥지'(agle`s nest)란 별명도 갖고 있다. 13세기 로마 침략과 14세기 흑사병을 피해 올라온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독수리 둥지를 연상케 하는 에즈 마을
주차장에서 올려다보이는 고풍스러운 16세기 건축물들
유구한 세월이 그대로 느껴진다.
깊고 푸른 지중해와 아침 햇살에 눈부신 에즈(에제) 마을
니체를 생각하며 걷는다!
니체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 에즈 마을은 니체에게 어떤 곳이었나! 오래전, 니체가 느꼈을 에즈 절벽의 드센 해풍, 따사로운 햇볕을 오늘은 우리가 그대로 품고 걷는다.
나는 아직도 ‘살아야할 이유’를 알아가는 중이지만, 지금은 각별한 자극을 받고 깨어나, 자유롭게 날아 오르고 싶다. 녹록치 않은 삶을 온전히 느끼며 살다보면, 아주 가끔은 나도 초인처럼 ‘나의 가능성’의 한계에 닿기도 할까?
에즈 마을 관공서로 보인다. '우리나라 주민센터? - 혼자 궁금해!'
로쉐 갤러리
에즈 마을 시계탑
에즈 마을 성당과 시계탑
3월 벚꽃 만개한 마을 골목길, 아틀리에 Marc Ferrero 갤러리 뒤로 라갤러리도 보인다.
에즈 절벽에서 '앨버트로스'처럼 날아오르고 싶다!
에즈 마을 골목길을 오르면서 눈은 지중해 풍경에 빠지고, 머릿속엔 니체(1844~1868)가 그린 초인에 관한 생각들이 들고 난다.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중세 골목 풍경이 고즈넉하고 따사롭다.
그런데 별안간 불어오는 드센 해풍에 한 번 휘청이고 나자, 시대를 앞서 살다간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1821~1867)의 '악의 꽃'에 등장하는 새 ‘앨버트로스’(신천옹)가 생각났다. 뱃사람들에게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희롱당하던 애처롭던 앨버트로스를 ‘악의 꽃’ 속에서 이곳 지중해 절벽 위로 불러내고 싶다. 앨버트로스는 2m 넘는 날개를 우아하게 펼친 채 고고하게 하늘을 날아야 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런 천상의 새지만 배 위로 끌려 내려가면 서툴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뱃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가능성을 향해 늘 멋지게 비상하던 날개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지고, 그 근사한 날개 때문에 평지 이륙도 힘겹다. 배 위도 평지도 앨버트로스가 있을 곳은 아니다. 에즈 마을 해안가 절벽위에서라면 이상을 향해 다시 날아오르지 않을까?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면 기류를 이용해 활강하듯 날아오를 것이다.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 살다 간 보들레르도 지상에선 항상 아프고 외롭고 힘들었던 이상주의자였다. 감히 보들레르의 새, 앨버트로스를 이곳 절벽으로 불러와 함께 지중해 위로 솟아오르려 꿈틀댄다! 나도 어쩌면 시인과 새처럼 고단한 현실 위로 고고하게 날아오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라 갤러리(LAGALERY)는 골목길 쪽 입구를 막아 놓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 계단 서너 개 위로 입구가 보인다. 눈길과 관심이 계속 가지만, 내려올 때 들러볼 생각으로 그냥 지나친다.
'라 갤러리'에 눈도장 꾹 찍어놓고 올라간다.
상점, la salamandre(도롱뇽)과 karma la salamandre과 Karma라고 쓰인 골목 안 상점 2곳 내부가 궁금하다.
Karma는 '살아 있고 의식 있는 존재 운명은 과거 행동과 전생에 의해 결정된다'는 힌두교, 불교 중심 교리라고 알고 있는데, 그 아래 그려진 다이아몬드는 또 뭐지? 보석상점인가?
일행과 함께 빨리 움직여야 편한데, 자꾸 눈길과 생각이 옆길로 샌다.
Le Nid d'Aigle(독수리의 둥지)에서 둥지를 틀고 싶어라! Salle interieure avec vue mer - 바다가 보이는 인테리어 룸이라니, 내 마음은 어느새 이곳에 둥지를 틀지만, 발걸음은 보이지 않는 일행을 쫓고 있다.
OUVERT, OPEN, APERTO -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로 '열려 있다'는 걸 세 번이나 밝힌다. 우리 같은 사람들 발길이 저절로 멈추도록.
주주와 레드루는 바빠도 서두르지 않는다. 어차피 정상에 다 모여 있을 테니.
에즈 열대 선인장 정원(Jardin Exopique)
입장료 6 유료, 관람시간 09:00~19:00(7월~8월 20:30). 이날 우리 일행은 첫 번째 단체 손님으로 선인장 정원으로 입장했다. 부지런한 한국인인가, 아니 바쁜 한국인이다.
에즈 빌리지 홈페이지 http://www.eze-tourisme.com/fr/
선인장 정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눈부신 지중해 풍경 열대 선인장 정원 입구로 들어서면, 하늘과 맞닿은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국기가 에제 마을 붉은 지붕 위에서 지중해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휘날린다.
정원 입구에서 Isis(이시스) 또는 Justine(저스틴)이라 불리는 이집트 여신이 우릴 반긴다. 에즈 마을 상징인 Isis(이시스)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파라오 화신으로 여겨지는 오시리스(Osiris) 아내다. 이집트 기념품 중 최고 인기를 누리는 이제트(Udjet)라 불리는 눈이 있는 수호의 신인 호루스(Horus) 어머니이기도 하다.
'호루스의 눈'이라고도 불리는 이제트는 악운을 쫓아내는 소호 부적 같은 의미로 사랑받는 장식이다. 시동생 세트(Seth)의 질투로 살해된 남편 오시리스를 다시 살려내고, 세트의 위협 속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고 전해져, 후세 사람들에게 '모성과 생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시스는 로마시대에도 풍요를 가져다주는 여신으로 여겨졌다. 에즈 마을에서 이시스 여신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주주와 레드루에겐!
Marina 여신
Marina 여신과 함께
Jean-Philippe Richard 사진: www.the-authentic-luxury.com 열대 선인장과 이국적인 여신 조각상들은 고풍스러운 에즈 마을과 지중해 풍경 속에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Jean-Philippe Richard는 30년 이상 모델러로 활동해 온 조각가다. 그의 조각은 비유적, 비현실적인 여성 형식을 독점적으로 탐구한다.
스스로를 가르치는 조각가로 모델 없이도 작동, 현실 제약을 극복한다. 그는 손에 주의를 기울이며 무릎에서 조각을 풀어내, 규칙적인 선으로 여성의 이상과 조화로움을 담아낸다.
조각가는 작품마다 여신의 이름인 Justine ou Isis, Margot, Isabeau, Anais, Rose, Mélissandre, Chloé, Charlotte, Marina...라고 각각 이름을 지었다. 이시스 동상은 이들 중 한 명으로 에즈 마을 선인장 정원에서, 방문객을 환영하며 맞아주는 첫 조각상이다. 그녀는 페니키아 인이다.
페니키아 문명은 기원전 40세기 '기시 문명'이 지중해 문명과 메소포타미아를 연계한 문명이라고 한다.
레드루도 여신 같아!
열대 선인장 공원에선 고대 여신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 고대 여신들은 풍만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데, 에즈 마을 여신들은 정 반대 이미지여서 더 독특하다. 모든 여신들은 날씬함을 넘어 깡 마른 인상적인 모습으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내 눈엔 모든 여신들이 성별 차이를 넘어선 듯, 독립적이고 위풍당당해 보인다. 연약해 보이지도 않는다. 21세기 여성상으로도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미지가 퍽 마음에 든다.
다양한 열대 선인장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지중해를 등지고 서면, 시계탑과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보인다.
에즈 마을 쪽에서 지중해 쪽으로 돌아본 풍경(현장음 그대로 담김)
에즈 마을 주변 지형을 설명하는 그림판 앞에 선 레드루 아름다운 지중해, 그 깊은 심연엔 오랜 역사가 담겨있다. 지중해(Mediterranean Sea)는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다. 해역 대부분이 세 개의 주요 대륙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별하다. 북쪽 유럽, 남쪽 아프리카, 동쪽 아시아(레반트)를 접하고 있다. 지중해는 말 그대로 '땅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다.
해역 면적은 250만 km² 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연결되는 지점(지브롶터 해협)은 폭이 14km에 불과하다.
평균 수심은 1,500m고, 가장 깊은 지점으로 기록된 곳은 이오니아 해 칼립소 심연이다.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를 이르는 일반적인 개념 지중해와 구별하기 위해 '유라 프리카 지중해'(Eurafrican Mediterranean Sea) 또는 '유럽 지중해'(European Mediterranean)로 부르기도 한다.
지중해는 고대부터 이 해역의 중요한 교역로였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니키아, 카르타고, 그리스, 레반트, 로마, 뭐인, 투르크 등 여러 민족이 많은 물자와 다양한 문화를 주고받았다. 지중해는 이 지역 공통분모이며, 세계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선인장 공원에서 바라본 깊고 푸른 지중해
에즈(에제) 절벽에서 지중해 쪽으로 돌아본 풍경!(현장 음소거)
에즈 마을을 품고 있는 지중해 위로 눈부신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 지중해와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있구나!
나는 이제 지중해를 마주하고 서서, 앨버트로스처럼 에즈 절벽 위에서 지중해 위로 솟아오른다.
지중해 심해를 자유롭게 유영하고 곧 하늘로 날아오른다.
절벽과 바다와 하늘이 내게로 와서 안긴다.
중세마을 에즈에서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얼마나 특별하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당장 날아오를 것만 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느낌은 뭘까?
날아올랐으니, 다시 에즈 절벽 둥지로 돌아온다.
그런데 둥지로 돌아와 보니, 모두 에즈 마을 주차장을 향해 떠났다.
주주와 레드루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에즈 절벽 위에서 강한 해풍에 한 번 휘청이고 나니,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든다. 어차피 주차장에서 모두 만나겠지만, - 우릴 두고 '생폴 드 방스'로 그냥 떠나진 않을 것이다. -
늦어지면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니 오를 때와 달리 마음이 급해진다.
길 잃은 사람이 되어 헤매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래도 라 갤러리(LAGALERY)에 들려 에즈 마을 풍경 그림 한 점 골라 구입하고, 달리기 선수 마냥 뛰어 내려간 이야기는 다음에서 이어간다. 다시 생각해도 숨이 차오른다.